익숙한 손님

by 이혜연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형제들과의 모임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예전 고향집 마루에 앉아 송편을 빚고 떡을 만들었던 기억은 퇴색되고 바래진 기억으로 편린 하다가 바람이 불던 날 바스락 거리며 부서져 흩어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결혼 안 한 남동생과는 자주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가정을 이루지 않아서인지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 더욱 아픈 손가락으로 느껴지지만 정작 본인은 일도 적당히, 투자도 적당히 하면서 여유롭게 골프도 하고 운동도 하며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와 가정을 이룬다는 게 불편하다고 하니 대한민국의 나홀로족이 늘어나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다행히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한 번씩 방문할 때마다 조카들에게 주머니를 활짝 열고 도깨비방망이처럼 카드를 휘둘러주니 아이들에게 외삼촌은 복권이나 다름없는 귀하고 귀한 손님이 되었습니다. 일요일에 시댁으로 간다는 말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오늘 집으로 와서 아이들 용돈과 선물을 주러 온 동생은 우리에게 익숙하고 정겨운 몇 안 되는 손님입니다. 언젠가 좋은 사람을 만나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지금처럼 건강하고 즐겁게 홀로 있는 시간을 맘껏 누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만 천 개가 넘었었는데 이번에 둘째가 사고를 쳐서 초기화시킨 후에 연락처를 저장해 보니 정작 오십 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10년 동안 가정주부로 살면서 관계의 폭이 좁아지기도 했지만 살아오면서 보니 주위에 많은 이들이 모두 필요한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익숙한 손님이 주는 편안함이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지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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