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산다는 것

by 이혜연


여든 살이 훌쩍 넘으신 시어머님의 연휴 레퍼토리는 십 년이 넘는 동안 변함이 없다. 남원의 부유한 집에서 셋째로 태어난 어머님은 사랑을 듬뿍 받을 시기에 서울에 새 살림을 차리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아버지의 사랑을 이복동생들에게 빼앗기셨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넓은 땅과 많은 재산을 큰아들에게만 넘겨주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시집을 오셨다고 했다. 그걸 본 어머니가 안타까워하시며 돼지 한 마리를 사주신 걸로 열심히 살찌워 소도 사고 땅도 사서 재산을 불리시다가 신랑이 8살이 돼서 시골에서 나와서 부산에서 슈퍼부터 시작해 다양한 사업을 하셨다고 했다. 성실하지만 무뚝뚝한 시아버지와 함께 하시면서 고생도 했지만 그 시대의 다른 남편에 비해서는 유한 성격에 별 걱정 없이 지금껏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항상 물레방아 돌듯 반복될 뿐 요즘 어떤 게 관심이 있으신지, 가을이 왔는데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에 대한 대화는 할 수가 없었다.


어제의 이야기에 오늘의 시간이 매몰되어 버린 느낌이다. 시댁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가 오늘 우리 식구가 서울에 올라오면서 다시 일 년 후를 기약하는 모임이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늙는다는 건 어떤 걸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계속 지나간 일들밖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을 때 사람은 낡아지고 나이가 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매번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만이 오늘을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계획했던 일을 게으름과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건 지금을 사는 사람의 태도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추석이 끝나는 다음 주 매번 개인전을 하던 송파여성문화회관 6층 갤러리 공간에서 전시회를 할 예정이다. 연휴기간이라서 담당자와 통화를 할 수 없지만 홈페이지에 원하는 날짜에 예약을 해놨다. 연휴가 끝나면 일정을 조율해 공간을 대여해 전시회를 할 예정이다. 조금 부족하지만 쌓아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제를 치우고, 오늘을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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