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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Nov 26. 2022

슬픔에 답하라

슬픔에 답하라

기쁨은 날아가고

침잠하는 눈물은

무겁게 

가라앉아


바람이 불고

태풍이 휩쓸면

그 슬픔의 무게로

나를 지켜낼 수 있으니


슬픔에 답하라

깊이깊이

진심을 다해서

그 부름에 

답하라



어제 내린 비로 가을은 서둘러 떠나가는 분위기입니다. 

오늘 아침은 제법 추워질 것처럼 바람에서 냉기가 느껴지더군요. 

떠나가는 모습 뒤엔 항상 아쉬움과 조금의 슬픔이 미련으로 남는 것 같습니다.

20대 초반 류시화 시인의 '그 슬픔에 기대라'라는 시구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어떻게 기쁨도 아니고 슬픔에 기대라 하는지, 기대긴 하되 그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하라니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슬픔이라는 것이 인생의 무게와 같아서 그것에 고심하며 답하다 보면 묵직한 마음의 중심축으로 남아 모든 것을 휩쓸어가는 태풍이 왔을 때 나를 지탱하는 닻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됐습니다. 

기쁨은 휘발성이 있어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얼굴이 상기되며 몸이 붕붕 뜨는 것처럼 가슴설레게 하다가 자고 나면 어제의 기쁨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다음엔 더 많은 기쁨을 찾아 기웃되기 일쑤죠.

하지만 슬픔은 더 큰 슬픔을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나를 건져내야 하기 때문에 집중하고 침잠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깊은 곳에 숨어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여리고 두려워하고 조금은 아이스러운 나는 그 속에서 앉아있다 도와달라는 말에 눈을 뜹니다. 

그때 함께 이겨내며 내 속의 아이는 나와 함께 한 뼘 자라게 됩니다. 

그 아이는 슬픔이 아니면 찾아지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에 깊은 절망에서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내면 아이가 커가면 다음 슬픔은 그냥저냥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인생에서 바람이 불지 않기를 태풍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보다 내 안의 아이를 조금씩 키우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깊은 슬픔에 정성껏, 최선을 다해서 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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