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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Nov 28. 2022

그럴 수도

그럴 수도


바위를 만나면 

에둘러 돌아가는

물처럼


그럴 수도 있다고

내가 당신의 전부를

볼 수 없듯

당신 또한 

그러하다고


바람이 쉬어가는

그늘에 앉아

잠시 마음 한 자락 

놓아본다

그럴 수도 있다고



육아를 하면서 아이에게 화내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아이에게 있는데도 엄마의 화내는 속도가 항상 더 빠르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억울할 수도 있고 서운할 수도 있다. 

뒤늦게라도 엄마가 설명을 듣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 조금 괜찮을 텐데 대부분 엄마가 급발진한 상태에서 사과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엊그제 두 아들을 머리 감기는데 역시나 둘째가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저번에 울지 않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너무 악을 쓰면서 울기에 나도 화가 났다.

그래서 이번엔 참지 않고 머리 감을 때마다 왜 이러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화를 냈더니 더 화가 나면서 주체가 안됐다. 

그동안 머리 감기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한 번에 쏟아졌다.

놀란 첫째가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잠시 후 마음이 조금 진정돼서 첫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냐고 물어봤다.


"엄마. 이번에 동생이 운건 내가 울지 말라고 리자몽을 줘서 그거 잡고 있느라고 눈에 비눗물이 들어가서 그런 것 같아."


머리 감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둘째에게 머리 감기 전 형아가 리자몽을 쥐어주던 게 그때서야 생각났다. 

둘째에게 물어보니 리자몽 잡고 있느라고 손으로 눈을 가리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껏 나는 잘 넘겨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다 마음속에 저장해놓고 있었나 보다. 

남의 실수나 나와 다른 부분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유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지...

둘째에게도 미안하고 그런 모습을 보여준 첫째에게도 미안해서 두 아들 모두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지만 뒷 맛이 떫떠름한 건 어쩔 수가 없다. 

언제쯤이나 내가 어른이 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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