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연 Dec 06. 2022

인연

굽이 굽이 사람이 길이다

인연

어두운 길을 걸을 때

뚜벅뚜벅 

혼자만의 발자국 소리에

서러움이 몰려올 때가 있다


어찌해서 

홀로 걷는가

어떻게 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을 것인가


그림자마저도 소리 없이 

따라오는 

외로운 길


저만치서 누군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때론 두렵고

어떨 땐 누군지도 모를 

그 숨소리에

무작정 달려가 

와락 안고 싶어진다


어둠 속을 걸을 때

길을 찾아 헤맬 때

그때 

함께 걸어주는 이


인연이다



오늘은 전시장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시는 분들과 사촌언니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와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 은인이자 버팀목이었고 지금도 혼자서 짝사랑하듯 하는 친구입니다. 

전 보험이 딱 하나 있습니다. 

20년 전에 들어놨던 생명보험인데 강도를 당하고 4년 후에 들었던 거예요.

암보장도 잘 되어있다고 하고 그때 함께 근무하던 간호사가 들어달라고 해서 그냥 가입했던 보험입니다.

원래도 보험에 대해 그렇게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이후로 다른 보험은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엊그제 무슨 일 때문에 신랑이 그 생명보험의 수령인을 보더니 저에게 묻더라고요.


"어? 생명보험 수령자가 000 친구야?"

"어? 응."

"왜??"


보험을 들 때 우리 집은 아직도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내가 없어지면 누가 가정 경제를 돌볼 것인가...

부모님은 경제관념이 많지 않으셨다.

나는 그때 친구를 생각했다. 그 친구라면 분명 믿을 수 있다.

그 친구라면 내가 왜 그 친구를 수령인으로 했을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혼을 못 하고 내가 어떻게 되면 그걸 우리 부모님에게 잘 전달하고 

살펴봐줄 거라 생각했다. 

그 친구는 최근 몇 년 전까지 해마다 보약을 해서 보내고 가장 어려울 때 

두말없이 와서 안아주고 간다.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둘 다 말이 별로 없고 심지어 나는 중요한 때엔 쑥스러워서 

제대로 표현 못하는 곰탱이 기질도 갖고 있다.


지금도 힘들 때 가장 먼저 전화하는 사람이다.

그냥 숨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를 할 때도 있다. 그럼 힘이 난다. 

오늘도 조용히 왔다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아는 체를 안 하고 

그림만 보고 있는 친구를 나중에야 알아보았다.

내가 사람들 틈에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더니 점심을 못 먹겠다고 판단했는지 

점심을 먹자고 했다. 

누가 있든 우선순위에서 그 친구가 밀려날 수는 없다. 

함께 식사를 하는 중간에 내가 밥을 못 먹을까 봐 일부러 시간을 냈다고 한다. 

오늘은 신입사원 면접이 있는 날이라 금방 가봐야 한다고 했는데 

일부러 밥을 먹은 것이다. 

한의원 운영도 하고 건강 관련 사업도 하고 있어서 항상 바쁜 친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개인전을 위해 시간을 내서 찾아와 그림을 사주었다. 


"세상 누가 그려도 당신의 삶이 담겨있는 그림은 그리지 못할 거야.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온 당신이기에 어느 누구도 그리지 못하는 그림을 그리는 거야."

그 친구는 점심을 먹으며 이렇게 말해주고 갔다. 


내가 죽고 싶었을 때 

"당신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나는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해준 사람. 

그렇게 어두운 길에서 나를 안아서 일으켜준 사람이다. 

일 년에 한 번, 때론 몇 년을 거쳐 한 번씩 밖에 얼굴을 못 봐도

항상 길이 되어주는 사람.

오늘, 하늘에서 내리던 눈꽃송이처럼 

따스하고 아름답게 그 사람이 다녀갔다. 




작가의 이전글 고요한 항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