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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Dec 08. 2022

당신의 창

문을 열어보세요

당신의 창

언젠가 당신은

오기로 한 시간을

훌쩍 지나고


낮이 밤이 되고

맑은 하늘에 

먹구름이 질 때까지도

오지 않았다


당신이 오실 길

창을 통해 

바라보다가

기다림에 조금씩

허리가 굽는다


약속한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알았다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오기에

가장 적당한 때라는 걸



벌써 약속된 시간이 다 지나고 내일이 전시회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저를 기다리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목요일마다 수업을 들으러 오신다는 분은 오늘 일찍부터 와서 저와 이야기하려고 기다리셨다고 해요. 

그런데 어린이집에서도 견학을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그림에 대한 감상과 질문을 받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나중에 어린이집 아이들이 가고 나서 본인이 아침일찍부터 나와서 저와 커피 마시며 이야기하려고 기다렸다면서 수업 끝나고 다시 오겠다고 가셨습니다. 이후 아티스트 웨이 보블리 샘이 오시고 궁금하시다며 설명해달라고 하시는 관람객들과 아이들 친구 엄마, 그리고 웹 3.0의 선두 커뮤니케이션 단체인 데불스의 허마일 함장님, 그리고 캐나다에 있다가 저번 주말 한국에 들어오신 빵 굽는 엄마님까지 아침 열 시부터 오후 6시까지 쉴 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남자분이 계셨는데 퇴직하고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서 

이제 막 시작하셨다는 분이었어요.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림이라는 게 제 소견에는 어떻게 그리는 지도 중요하고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그걸 어떻게 표현해내고 싶은지도 중요한 거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강릉으로 여행을 가신다면, 선생님은 어떻게 가시겠어요?"

"네? 글쎄요..."

"편하게 평소대로 말씀해주세요."

"뭐.. 먼저 차표를 예매해야겠죠. 

그리고 어디를 여행할 건지, 어떤 걸 먹을 건지 검색해서 예약을 하고 숙소도 미리 잡아둬야겠죠."

"계획하시고 미리 예비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편이신가요?"

"맞아요. 모두 다 그렇지 않나요?"

"제가 만약에 선생님과 헤어진 후 강릉을 간다면 저는 지하철을 타고 고속터미널에 갈 겁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면서 신나 하겠죠. 

도착하면 바다를 볼 겁니다. 

바닷가를 걷다가 맘에 드는 카페를 찾아 커피를 마시고 

밤이 되면 적당한 숙소를 찾아보겠죠. 

때론 식당에서 물어서 해결하기도 하고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즉흥적으로 여행하시는 걸 좋아하신다는 거죠?"

"네. 전 우연성에 대한 것들을 즐기는 편입니다."

"그러시군요."

"만약 선생님과 제가 강릉 여행에 관한 책을 쓴다면 어떤 책을 쓰게 될까요?"

"글쎄요.."

"제 생각엔 선생님은 여행서를 쓰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마 인생에 관한 책을 쓰게 되겠죠. 

사람들에게는 둘 다 이로운 책이 될 겁니다. 

정답이 없다는 거죠. 

모두가 필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까지의 선생님의 삶이 계획대로 그 틀 안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우연성에 한번 맡겨보시면 어떨까에 대해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분은 한참을 그림과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셨습니다. 

개인전을 해서 좋은 점 하나는 그림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의 기회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인연 들이였겠지요. 

오전에 저를 기다리다가 가셨던 분은 오후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시 친구분과 함께 오셔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가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왜 전시를 내일까지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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