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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Dec 11. 2022

겨울 단상

겨울 단상


겨울이 오는 길목

지나온 시간들이

박제되어 있다


함께 했던 날들은

이미 지나갔고

그날의 향기도 흩어져

마른 체취만이 남은

겨울의 그늘


찬바람이 고여

마음도 얼어버린 곳에서

지지도 못하고

굳어버린

마른 억새들의 노래가

잊히지 않는 추억들로

아프게 들려온다



축제가 끝나고 난 뒤의 허전함은 마음의 병으로 오는 걸까요?

모든 떠나간 자리에 혼자 박제된 듯 잠시 멈춘 시간 속에서 웅크린 시간들이었습니다.

가을이 떨어뜨리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 생기를 잃은 채 겨울을 맞는 꽃들은

마른바람 소리를 내며 울고 있었습니다.


오전 내내 누워있다가 점심시간에 신랑이 잠시 바람이나 쐬러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온몸이 아파서 아무 곳에도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껏 전시회 한다고 함께 한 시간들을 소홀히 한 것 같아 동행했습니다. 점심을 먹고 근처 야산에서 산책을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 나지막한 산기슭엔 마른 밤나무 잎사귀들이 포근하게 쌓여 가는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떨어진 것들이 포근히 감싼 겨울 길은 오히려 두텁고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기억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지나갔고,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시간들의 기억들이

추운 겨울 어느 날까지 남아 따스하게 서로를 데워줄 거라 믿어봅니다.


겨울은 어쩌면 따스한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짙어져 가장 포근한 시간들을 즐기게 되는 날들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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