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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Dec 28. 2022

그냥, 아무 날

그냥, 아무 날

그냥

하루였다


해는 뜨거나 졌고

바람이 간간히 불었겠으나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너무나

무심했다


아무 날에  

 하루의 아무 

그런 날들로

오늘을 채울까 두려웠다


무심한 마음 거두어

아침 햇살을 두 손 가득 담아보자

바람이 차갑게 얼려버린 

머리를 감싸고

동동거리는 발걸음을 옮겨

아무 날이 아닌

오늘을 살아보자





정말, 격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이것저것 할 일은 많은데 갑자기 힘이 풀리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혹시 그런 날들이 있었을까요?

오늘 새벽에 일어나 꿈속에서 봤던 장면을 그리려는데 그림이 안 그려졌습니다. 

혼자서 끙끙대는데 엄마껌딱지인 둘째가 울어댑니다. 

6살인데도 자다가 제가 없으면 아직도 자지러지게 웁니다.

재우고 다시 2차 시도를 하는데 둘째가 또 웁니다.

오늘 새벽 그림은 포기...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마사지해주고 그림책 읽어주고 오늘 할 일 체크하는데 

갑자기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물 밀듯이 밀려옵니다.

누워서 진짜 아~~~~~~무 것도 하기  싫어졌습니다.


책상에 앉아 멍 때리다가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가을, 한 날.

나무에 다닥다닥 열려있던 대추들.

그런데 그 한 알, 한 알이

그냥 열린 건 없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때론 열 마디의 말보다 대추 한 알이 나를 더 부끄럽게 하기도 하고 

나태함에서 일으키기도 합니다.

시는 이렇게 놀라운 언어라는 걸 또 다시 느낍니다.

그런 시를 써낸 시인들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은 그런 시를 써내고 싶은 살리에르의 마음까지 겹쳐 

납덩이처럼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살다 보면 아무 날도 아닌 날에 아무렇지도 않게

절망도 하게 되나 봅니다.

그러다 또 아무 날도 아닌 어떤 날엔 싱글벙글 웃으며

환희에 들뜨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되도록이면 주어진 오늘의 햇살과 바람을 제대로 느끼며 살아내고 싶습니다.

조금 더 깊게, 조금 더 찬찬히, 조금 더 세밀하게..

나를 일으키고 깨우는 날들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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