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걸음만큼의 세상

나의 살던 고향은

by 이혜연
다섯 걸음만큼의 세상

엄마가 안 계신 빈 집에

아빠 제사를 지내러 왔다


후덥지근한 여름

작은 그늘이 있는 마루에서

마당을 내려다본다


다섯 걸음

어른이 걸으면 딱

다섯 걸음만큼의 세상 안에서

자그마한 아이는

참 많은 걸 했었다


봄이면 새싹이 자라는 게 신기했고

여름엔 백반을 넣어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고

가을이면 감도 따고

자치기도 하고

겨울엔 엄마가 해 주신

팥죽을 먹으며

무릎까지 차오른

눈 그림자를 보곤 했었다


엄마도 요만큼의 땅을 놀리지 않고

작은 한켠엔 정구지, 상추를 심어

뜨거운 여름

이것저것 없는 밥상에

마당에서 상추 뜯고

정구지 베서

고추장에 쓱쓱 비벼먹으면

땀이 삐질삐질 나면서

속이 후련해졌다

여름도

봄도

몇 해의 계절도

그렇게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새

마당은 이렇게 좁아졌을까

여름 밤하늘을 가득 담아내던

평상은 어디갔을까


사립문을 제 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안부도 묻고 일손도 구하던

옆집 아저씨, 앞집 아줌마는

할머니가 되더니

엄마와 함께 하늘로 가시고

이제 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리 엄마도

옆집 아줌마도 없이,

그리고 마당에서 고무줄 뛰던

어린 소녀도 없이

그렇게 해가 지고 있다


돌아보면 겨우

다섯 걸음

그 안에 들어있는 추억도 농축이 되어

흙속으로 스며들었을까

매미소리만 가득한 여름 마당

엄마도 없이

그렇게 마루에서

작았던 내 어린 시절의 세계를

기억해본다



연휴에 아빠 기일이 있어 고향에 내려왔어요. 빈집이라 와이파이가 없으니 반강제적으로 sns가 차단됐어요.

어렸을 때 살던 모습에서 거의 변한 게 없는 고향집.

마당이 그렇게 넓었었는데...

저 조그마한 마당에 닭, 강아지, 염소, 돼지, 소, 뒤엄자리, 고양이까지 함께 살았는데도 작은 줄 몰랐었는데

중년이 된 지금 보니 어떻게 그 많은 것을 담고 있었는지 놀라울 뿐입니다. 엄마가 없는 빈집은 정말 텅 비어있음을 때때로 느낍니다. 그런데도 몇 달만에 찾아온 온기가 반가우신지 사진에서 엄마는 환하게 웃고 있네요.

이제 또 휴가가 끝나고 서울로 가면

사진 속 부모님만 텅 빈 마당을 보며

저 문을 열고 들어올 자식들을 기다리시겠죠.

작은 다섯 걸음 걷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즘입니다.

이전 07화까페, 공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