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자리

네가 있는 자리가 꽃자리

by 이혜연
네가 있는 자리가 꽃자리

식구들 주려고

마당에 솥을 걸었지


장작을 넣어 오래 끓여

진한 곰국도 만들고

펑펑 눈 오는 마당에 불지펴

자식들 좋아하는 팥죽도

눈꽃처럼 예쁜 새알 띄워

따뜻하게 끓여냈었지


이제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게 된 자식들과

더는 솥걸고

기다리는 노모가 없는

텅 빈 마당 한구석에

아궁이 재가 쌓여있던 자리에

봉숭아 꽃이 피었다


유난히 커다랗고 예쁜 꽃

기다리는 마음도

보고 싶은 마음도

다 재가 되었구나



붉게 피어나 탐스럽게 물들어

여름 한철 향기롭게 피다지더라도

네가 있는 자리

그 자리가

꽃자리였구나


자식이 다섯에 그중에 아픈 아이 하나.

논 한떼기없는 가난한 소작농은 항상 일에 허덕이고 먹을 것에 목말라있었다. 그런데도 논두렁이나 길가의 작은 땅 한 조각마다 팥도 심고 콩도심어서 아이들 학비도 마련하고 겨울이면 마당에 솥걸고 팥죽을 끓여 자식들 배부르게 하셨다.

아빠 생전에 해놓은 장작은 뒷간에 계속 쌓여만 있고

솥걸던 아궁이 자리는 무너졌다.

돌아보면 참 애쓰신 세월.

보답도 없이 세월만 간 것 같다.


아궁이 불 때던 자리에 남은 재들이

땅을 기름지게 했는지

거기에 뿌리내린 봉숭아가

유난히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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