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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an 14. 2023

따뜻한 비

따뜻한 비

웅크린 채 얼어있는 어깨를

보슬보슬 아기 비가

살포시 감싸 안는다


"괜찮아

추운 건 다 지나갔단다


지난 계절에 뿌려둔

너의 씨앗들이 이제

힘껏 솟아올라

꽃을 피울 거야."


차가운 땅 위를

소곤소곤 따뜻한 비가

포근히 안아 준다



우리들의 계절 이야기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 계절이 있다는 말이 있다. 

모두가 사계절을 지나며 살지만 사람마다 그 시기가 같지 않다고 한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겨울을 먼저 맞았다. 

겨울에 태어나기도 했거니와 어렸을 때 환경이 그랬다. 


겨울 지나니 봄이 왔다. 수확하는 것 없이 열심히 일만 했다. 

어떤 일을 하나 처리하면 그다음 해결거리가 생겼고 돈이 모일만 하면 

다른 곳을 막아야 할 일이 생기곤 했다. 

그리고 그 봄에 꽃샘추위가 겨울보다 무섭게 왔었다. 


시간이 지나 여름이 왔을 땐 혼자 정처 없이 여행을 다녔었다. 

버스 타고 전국여행을 혼자 하면서 지리산 둘레길도 걸어보고 혼자 자갈치시장에서 회도 사 먹고 잠은 찜질방에서 자면서 그렇게 떠돌아다녔었다. 

통영의 작은 섬에서 바다를 보며 하염없이 걸었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여름을 활활 태우다 가을엔 소중한 아이들을 맞았다. 


나는 내 아이를 갖게 되면서 나의 진정한 모습을 봤다. 

남에게 보이는 내가 아닌 육아라는 극강의 활동을 통해서 자아성찰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때 비로소 내가 아직 나로서 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덜 자란 아이가 엄마가 된 것처럼 감정처리하는 것도 무섭고 아이를 세상에 내놓을 일을 생각하니 온통 두려운 것 투성이었다. 

세상이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게 된 게 아이를 낳으면서였다. 

모든 것들이 달라 보이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내 자아가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육아는 정신적. 육체적인 것들을 최대로 요구하는 일이었다. 

어제까지 안 들었던 철이 오늘 갑자기 내 필요에 의해서 생길 수는 없지 않은가?

부족함만 보이고 세상이 두려웠을 때 나는 내가 좀 더 따뜻한 사람이 되는 길을 생각했다. 

바꿀 수 있는 게 적 을지라도 적어도 우리 아이에게만은 편히 쉴 수 있는 

따뜻한 집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났다. 


오늘 내리는 겨울비처럼 차가운 겨울도 포근히 감싸 안아줄 수 있는 

그런 가랑비 같은 사랑을 내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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