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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an 16. 2023


엄마

어젯밤에 꿈을 꾸었어


벌써

날 잊었더라


그래서 우린

친구가 되었어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었지

그리고

들었어


친구처럼


위로할 준비도 되어있었고

함께 울어 줄 준비도 되어있었고

꼭 안아줄 준비도 되어있었는데


아침이 와서

깨버렸어


꿈속에

엄마를 두고




지랄 총량의 법칙에 대해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된 것들이 많은데 그중에 가장 놀랍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던 것이 있다.

바로 모든 자식들은 부모에게 지랄의 총량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 그랬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 껌딱지였고 보호자였으며 커서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여행을 함께 다녔던 자식이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외할머니가 엄마 힘들지 말라고 너를 내게 보내주셨나 보다" 라며 말씀해주시곤 하셨다.

사춘기 때부터 혼자 살았던 나는 투정보다는 독립하기 바빴었다. 

내 몸을 지켜야 했고 빠듯한 용돈으로 어떻게 하면 굶지 않을까 고민했었다. 

월급을 받을 때부터는 엄마에게 해드리고 싶은 것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그때까지 나는 모든 자식들이 부모에게 보여준다는 지랄총량의 법칙을 몰랐었다. 

그런데 나이 마흔이 돼서 뒤늦게 사춘기가 왔다. 

그래서 모아놓은 총량을 한 번에 다 써버리는 못난 짓을 했었다.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었고 이렇게 느려진 게 못나게 살아온 엄마 탓인 것 같았다.

참고만 살아온 사람, 갑자기 찾아온 치매로 지금껏 엄마를 함부로 대했던 아빠는 

엄마 껌딱지가 되어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지극으로 아빠를 돌봐주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런 엄마를 나는 뒤늦게 아주 아프게 울려버렸다. 

엄마에게 상처 준 이야기를 나는 잘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다. 

그 이야기를 하면 내가 울 것이고 그럼 눈물과 함께 죄책감과 미안함이 

희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상처를 준 나를 아직은 용서하지 못하기에 형벌처럼, 문신처럼 새겨놓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아직은 엄마를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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