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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Feb 06. 2023

나를 채우는 시간

나를 채우는 시간

가끔 며칠을 굶은 것처럼

속이 텅 빌 때가 있다

허기가 진 것도 아니고

배가 고픈 것도 아닌데

살아있으므로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야 될 것처럼

무언가로 채워야 하는 의무감에

사로잡힐 때


내가 채워졌었던 적이 있었는지

무얼 담고 있었는지

아니

지금 비어있는 게 맞는지

그것 조차 모를 때


그냥 그 시간이

흘러가도록

아무것도

아무 일도

아무도 담지 말고

텅 빈 시간 홀로

저만치 흘러가도록

그렇게 나를 채워보자



가정을 이루고 가장 좋은 점은 악몽을 꾼 후 누군가의 품으로 숨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서 자취할 때는  항상 경계태세를 갖추고 잠을 들었는데 아이들과 옆지기가 있으니 몸은 피곤해도 마음의 경계는 한결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악몽은 하루종일 못 잔 것처럼 머리를 아프게 합니다.

꿈인 줄 알면서도 전전긍긍 대며 하루종일 떨쳐버리려고 애쓰는데도 밤새 잠을 설쳐서인지 머리가 너무 무겁습니다. 머리가 멍한 상태인데 왜 속도 궁한 상태가 되는 걸까요?

빈 속에 밥도 넣어보고 커피도 넣어보고 별일 없이 걸어봐도 텅 비어 바람만 스산하게 스쳐 지나갈 뿐입니다.

이럴 때 좋은 건 비어있는 그대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일까요?

때때로 시간도 바닥이 뚫린 그릇처럼 어떤 것도 담지 못하고 쏟아져내리는 때가 있나 봅니다.

그럴 땐 아무리 애써도 채울 수 없으니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게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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