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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Feb 10. 2023


해질 무렵 

길게 늘어선 그림자 속엔

오늘의 사연들이 있다


붉은 노을에도 물들지 못한 마음들이

검은 그림자 속에 

자신의 울음을 움켜잡고

쳐진 그림자를 부축이며 

안으로 들어선다


어디에서 쉴 것인가


어둠이 들어선 길 위로

검은 그림자 녹아들면

스며들지 못한 빛 그림자

길가에 동그마니 앉아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인생을 다시 한번 반추해 볼 때가 있다. 

처음엔 아주 자세히 미세한 것 하나하나 들추어보고 그것들을 해석해 내는 과정이 있다. 

이때는 주위의 소리를 손끝에서 다 흡수해 버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다 하나하나 세심하게 그려나가다 보면 왠지 내가 참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이 온다. 

야호!! 하는 순간 오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왠지 나만 알아차릴 것 같아 수정하려는 몸짓을 거부해 본다. 

다시 뚫어져라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럴 때 참고 참았던 화장실을 가거나 물을 마시러 간다. 

5분도 안 되는 시간.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아까보다 더 많은 실수나 표현해 내지 못한 부분이 보인다. 

혼자서 머리를 감싸며 다시 시작한다. 

천천히 하나하나 다시 점검하고 둘러보다 보면 조금씩 생각했던 것들이 표현되기도 한다.

어느 정도 리터치를 하고 다시 멀리 떼어놓고 본다. 

이런................ 안........ 돼..................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단점들....

그리고 다시 수정.

그림도 인생도 한 번에 되는 건 없는 것 같다. 

내가 완벽해 보이는 때는 잠깐 뿐이고 매번 수정에 수정을 거치며 조금씩 실수를 줄여가야 한다. 

그리고 최대한 내가 원하는 목표를 깊이 들여다 보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그려봐야 한다. 


그렇게 그림을 그리다 보면 그리는 대상 속에 내가 들어간다. 

나는 오늘 구슬이 되었다. 

하나의 섬이 되어 수만 가지 빛을 품고 있는 구슬.

데구루루 구를 때마다 다시 색이 바뀔 것이다. 

그렇다고 변한 건 없다. 

그저 빛이 변했고 움직임이 있었고 이만큼 굴러왔어도 

나는 여전히 나였고 내 속엔 무수한 다른 빛들이 남아있었다. 

오늘 구슬이었던 나는 내일 어떤 모습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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