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by 이혜연
여우비

갑작스러운 비에

비설거지하듯

붉은 꽃을 안으로 들였다


여우볕이

그늘진 창가 언저리까지

마중 나와 주니


겨우내

목을 빼고 기다렸던 걸음들이

순식간에 휘둘러 달려간다


비가 지나간 자리

흙내가 더욱 진해졌고

마른 가지들은 숨통이 트였는지

금세 꽃가지들을 밀어 올린다


여우비에 모두

바지런해진 날

느닷없는 봄이 어느새

창밖에 와 있었다




괜스레 짜증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고 여느 때와 다를 게 없는데도 밑도 끝도 없이 모든 게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날.

맑았던 하늘에서 엉뚱하게 비가 내리는 여우비처럼 우울이 순식간에 머리를 적십니다.


아이들과 산책을 가서 자꾸 미간에 주름이 가고 소리가 앙칼져지는 저를 봅니다.

왜인지 모르게 오늘은 아이들과 신랑에게 계속 예민해지는 것 같아

신랑에게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마냥 걸었습니다.

한참 걷다가 작은 꽃가게에 가서 봄꽃들을 보고 이제 막 꽃대를 피워내는 노란 앵초를 하나 사들고 나왔습니다. 봄이 어느새 코앞으로 온 것처럼 좋았습니다. 노란빛의 꽃대들이 마음을 포근하게 물들입니다.

내친김에 친구 어머니가 야채를 파시는 곳까지 가서 상추와 시금치를 얻어오고 레드향과 딸기를 사다 드리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갑자기 왜 기분이 나빠졌는지 왜 그렇게 예민해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울했던 마음이 왜 풀렸는지는 알겠어요.


혼자만의 산책, 작은 화분의 꽃, 그리고 누군가에게 준 선물.

살다 보면 때때로 우리는 맑은 하늘에 날벼락처럼 감정에서든 또는 어떤 일에서건 여우비 같은 대비할 수 없는 경우들을 겪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합니다.

비는 언제든 느닷없이 쏟아질 수 있고 내 삶을 살아줄 수 있는 건

오직 나밖에 없으니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