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방

by 이혜연
그녀의 방


오래된 그녀의 방에

낡은 오후의 빛이

머문다


고요한 숨소리를 따라

길고 무거운 그림자가

서서히 자라

벽에 기대어 스며든다


언제쯤이었을까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웃음이

저 창을

일렁 일렁 넘어 들었던 그때


참 설레었었지

풍선처럼 가벼웠었지


지금 그녀의 방에 가득 찬

오후의 햇살만큼

노쇠한 그녀의 그림자


낡은 벽에 스며들어 있다


나는 신을 보았다


큰 애가 초등학교 가면서 하는 활동이 많아졌다. 성격적으로 철두철미한 성격이라 주어진 일에 언제나 진심을 다한다.

그러다 2주 전 학교에서 강낭콩 한 알을 가져왔다.

6시간 동안 물에 불린 후 작은 포트에 심어 싹을 틔워오기였다. 첫째는 강낭콩을 새끼 키우듯 애지중지했다. 물에 불릴 때도 흙에 심을 때도 지극정성이었다.

흙에 심은 후부터는 더 가관이었다.

강낭콩이 심심해할까 봐 포트를 들고 동네 산책을 간다고 들고 다녔다. 정말이지 옛 시인의 말처럼 다정도 병이었다.

문제는 같은 반 아이들이 싹을 틔우고 유아만큼 줄기를 뻗어내고 있을 때 우리 강낭콩은 아직도 자고 있다는 것이다.

애가 탄 첫째는 햇볕이 잘 드는 곳을 찾는다며 이리저리 햇살을 찾아다녔다.

그런데도 아직도 감감무소식.


그런데 큰 아이를 보면서 나는 신을 느꼈다.

신도 자신의 창조물이 싹트고 성장하기를 저렇게 바랄 것이다. 온 마음으로 그의 성장을 기대하고 기다릴 것이다. 예수가 자신의 달란트를 흙에 뭍은 것을 '게으른 자여!'라고 비난했던 것처럼 어쩌면 흙속에서 스스로를 구원치 못하는 강낭콩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큰 아이의 강남콩

오늘 아침 큰 아이는 아직도 깨어나지 않는 강낭콩에게 나뭇잎 편지를 남겼다.


"사랑해."


그렇다.

모든 창조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기다리고 있다.


추신.

놀이터에서 만난 1학년 학부모들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안나는 건 콩이 썩었기 때문이란다. 마트에 가야 하나보다.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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