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잔을 가득 채우리라

by 이혜연
너의 잔을 가득 채우리라

둥근 그릇엔

가득 찬 달을 담고


열린 밥그릇엔

오늘 하루치 밥을 담고


맑은 화병엔

향기로운 꽃을 채우리


좁고 기다란 주둥이 그릇

그곳엔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1. 따라큐 놀이


우리 똥그리들이 최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포켓몬입니다. 캐릭터가 많고 각 캐릭터마다 두 번 세 번 진화까지 하니 따로 도감을 사서 공부하기도 합니다. 그중 따라큐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들키기 싫어 귀여운 피카츄 거죽을 뒤집어쓰고 상대의 행동을 따라 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본모습이 아닌 거죽만 썼기 때문에 항상 몸이 기울어진 채 눈에 초점이 없습니다. 그런 따라큐를 보고 가끔 두 똥그리들이 집에서 따라큐 놀이를 합니다. 형아는 동생을 동생은 형을 따라 하며 놀 때는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합니다. 가끔 그러다 싸우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엊그제 그 두 놈이 엄마를 따라큐 하는 겁니다. 귀여워서 웃고 있을 때의 배시시한 웃음부터 무표정한 얼굴, 화내는 얼굴까지.. 순간 무섭더군요. 아이들은 모든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그때 배설해 버린 내 감정들을 아이들은 확실히 보고 그걸 담고 있었던 겁니다.

"네 잔을 가득 채우리라"

과연 나는 아이들의 잔을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 걸까요


2. 만년초 나무


식물을 좋아해서 다양한 화분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중에 만년초가 있는데 3년 전부터 함께 지내고 있어요.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있을 때 땅이 모자랄 정도로 작은 새싹을 떨궈대서 공간이 너무 협소해졌습니다.

그러던 중 다른 큰 화분이 생겨서 포화 상태의 만년초를 이사시켰습니다.

옮기고 나서 한 달은 예전과 비슷한 크기의 만년초로 별 변화를 못 느꼈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넘어서부터는 무섭게 자라기 시작하더니 세 달 정도 됐을 때 작은 화분에서 자라던 크기의 5배 정도가 커졌습니다.

작은 아이에서 거인으로 자라는데 그릇의 크기가 한 몫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마음의 크기, 꿈의 크기가 커야 하는 이유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요즘 허영만 화백의 '꼴'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관상에 관한 책이지요.

모양을 보고 심성과 운명을 읽어내는 학문입니다.

덕분에 제 얼굴 모양과 몸의 형태를 관찰하게 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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