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자리

by 이혜연
여름의 자리


들숨과 날숨에

추를 달아놓은 듯

산다는 게 버거운 날들


막대사탕처럼

빌딩이 녹아내리고

아스팔트는 초콜릿처럼

쩍쩍 달라붙는다


도시의 가로수만이

깊숙이 내린 뿌리로

물을 길어


여름에 갇힌 도시에

인공호흡을 하고 있다




요즘 도심은 정말 길을 걸으면 쩍쩍 달라붙고 빌딩이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오늘은 첫째와 체조수업을 갔다가 오후엔 아이들을 데리고 올림픽공원 워터파크로 갔습니다. 올해 처음 개장한 워터파크는 여느 상업시설보다 좋습니다. 공원에 있어 시원하고 물높이가 다른 5개의 풀장이 있고 미끄럼틀과 배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제일 감동한 건 안전요원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름은 물놀이 사고가 많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안전이 가장 염려된 부분인데 생각보다 많은 요원들이 계셔서 좋았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대학 2학년때가 떠올랐습니다. 그땐 식당, 옷가게, 군청 등등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할 때였습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알바를 구하는데 중학교 때 친구의 친구로부터 고소득 알바가 있다고 해서 앞뒤 따지지도 않고 하겠다고 자청한 일이 관광호텔 워터파크에서 일일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전 낮에는 물속나라 선생님을 맡아서 하루종일 물속에 있다가 저녁이면 캠프파이어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푹푹 찌는 여름밤. 매일 다른 유치원 아이들을 맞이하며 호랑이 탈과 옷을 입었는데 호랑이 옷은 덥고 볼 수 있는 시야는 호랑이 눈의 바늘구멍 같은 구멍 하나였죠.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는 날들을 여름 호랑이가 되어 한 달을 꼬박 견뎠습니다.

매일 밤, 한 달이면 얼추 등록금을 벌 수 있을 거란 기대로 힘들지만 재밌게 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거의 다 됐을 때 아르바이트비를 준다는 사장님이 일이 생겼다며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 달이 되는 날도 그다음 날도 연락이 닿지 않아 쫓겨나다시피 관광호텔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집으로 갈 차비도 없어서 부모님께 전화하고 어찌어찌 버스비를 얻어 돌아오는 차에서 제 어리석음과 욕심과 무지에 대해 원망하고 자책하며 얼마나 울었던지.. 오늘 새삼스레 물속나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안전요원들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지나고 보면 다 잊히게 되고 슬프고 서러웠던 일들도 단지 하나의 사건, 혹은 추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뜨거운 여름에 숨이 막히는 분들이 계시더라도 내 인생에 여름이 왔으려니 생각하시면 어느덧 선선한 가을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올 것이라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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