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었습니다

by 이혜연
꽃이 피었습니다.


빛나는 주황, 노랑

심지어 퇴색미 넘치는 갈색마저도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는 너는

어디서부터 온 것이냐


초록이 간직해 온 소망

갈망해 온 깊이만큼

뿌리를 뻗어내어

드디어

오늘을 꽃피워냈구나


지금을 피워내는 너로 인해

남루한 삶 가득

향기가 채워진다



드디어, 8살 인생 첫 골을 넣다


첫째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그의 인생은 축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 걷고, 먹기 싫은 야채도 축구를 위해 먹는다. 나중에 영국에서 뛸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 A, B, C를 공부하고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축구공과 함께 놀이터를 누빈다. 그러니 매주 금요일마다 하는 축구 방과 후 수업은 그의 축제날이다. 그날을 위해 아끼는 축구복을 모셔두고 축구 양말도 고이 접어둔다. 그렇게 소중한 축구시간마다 한 가지 열망이 있었으니 연습 후 갖는 모의 축구시합에서 골을 넣어보는 거다. 첫째가 모르는 첫째의 비밀은 겁이 많고 몸치라는 거다. 공이 자기 쪽으로 날아오면 몸을 웅크리며 방어하기 바쁘고 반응속도도 조금 느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째의 머리에는 자신이 초등학생 메시가 될 수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매번 금요일마다 우리는 그의 첫 골 소식을 목이 빠질 것처럼 기다렸는데 드디어 오늘, 눈먼 공이 골망을 흔들며 들어가 주신 거다. 마중 나간 나에게 눈을 반짝이고 흥분으로 들썩이는 콧구멍, 발그레해진 볼에 자부심 가득한 미소를 띠며 첫째가 승전보를 전해주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월드컵 우승보다 놀랍고도 경이로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첫 골을 기쁨으로 맞이했고 기념으로 문방구에서 포켓몬 카드를 선물하는 것으로 축제를 마무리했다.


아이를 키우며 다른 행복도 많지만 무엇보다 아주 작은 일상의 어떤 것들을 우리 아이가 해냈을 때 아무리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도 반짝반짝 빛나는 감격이 되고 기쁨이 되는 일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의 모든 것들은 어른의 남루해진 묵은 감정들에 생기를 불어넣고 다시 빛나게 하는 마법의 꽃을 피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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