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지나간다

by 이혜연


폭염으로 들끓었던 한 낮도

처서의 콧김 한 번에

구름이 바뀌고

비를 쏟아내더니

계절을 바꾼다


살다 보면

어제도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내일은 맞이해 보지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지나치다가

다시 길 한가운데서

오늘이 닥치곤 한다


가끔

그냥 서서

잃어버린 건 없는지

발밑을 세워두워야한다



계절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약속한 시간에 당도하고 있다.

비가 전혀 없어 보이던 뜨겁던 날들의 연속이더니 처서가 되니 구름이 몰려들고

비가 내리며 펄펄 끓어오르던 땅을 식힌다.

저 많은 구름이 어떻게 하루 만에 절기를 바꾸는 것일까.

열기 가득한 푸른 하늘에 어떻게 그 많은 먹구름들이 숨어있었을까.

가을을 준비하는 자연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거두어들일 것 들을 영글게 하고 있다.

조그맣던 감이 커졌고, 배는 더 튼실해졌으며, 사과는 붉게 익어가고 있다.

거대한 신은 창고에 채울 열매들을 이렇게 착착 준비해 내는데

수확의 계절에 내 창고에는 무엇을 채울 수 있을까..

봄이 지나고 여름을 지냈고 벌써 한 해의 3분의 2를 보내버렸는데

어디서, 얼마만큼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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