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도시에 아직 도착하지 못한 가을이 남녘 들판에 노란색, 붉은색으로 슬며시 번지고 있었습니다. 시댁 선산이 지리산 자락이어서 매년 8월 마지막 주를 약속으로 벌초도 하고 서로 얼굴도 보면서 시제도 지냅니다. 아이들에게 보여줄 겸 매년 참석하는데 여행 오는 것처럼 마음이 즐겁습니다. 거기다 서울에서는 아직 느끼지 못한 이른 가을을 미리 살짝 보는 것 같아 특별한 경험을 한다는 우월감까지 우쭈쭈 듭니다. 함양에 들어서니 곳곳에 사과가 빨갛게 주렁주렁 달리고 논에는 벼이삭이 벌써 노오란 빛을 띠고 있습니다. 길가의 강아지풀은 벌써 오색으로 가을 치장에 나섰고 하늘은 깊어져 그간의 시름을 던지면 그대로 삼켜 '아무 일 아니다, 다 지나간다'라고 위로해 줄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우리 가족의 첫 번째 가을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