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킬로 정도의 신작로 길을 걸어 학교 교문에 도착했을 때는 9시가 조금 안 됐을 때였다. 빗속을 걸어올 때는 등교가 목표였지만 막상 학교 앞에서는 교실에 들어가기가 싫어졌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마지막 게으름뱅이 친구가 교문 앞에 우산을 세워두고 그 속에 달팽이처럼 앉아있던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죠. 하지만 이미 오늘 땡땡이치기로 마음을 굳힌 나는 결연한 표정으로 학교에 가지 않을 것을 피력하고 있었습니다.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이유도 없이 어디도 가지 않고 교문 앞에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비를 보며 앉아있었습니다. 그런 저의 유전자가 둘째에게 고스란히 열개쯤 들어갔는지 요놈이 비만 오면 도로나 하천 구분 없이 손을 넣고 발을 담급니다. 어제는 비 오는 운동장에서 우산으로 텐트를 치고 앉아있자며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쭈그려 앉아있었습니다. 이런 게 업보인 건지.. 겁 많고 눈물 많고 엉뚱했던 내 수만 가지 유전자 중에 열개가 왜 유독 둘째에게 몰려갔을까요?
그날 학교가 끝날 때까지 하릴없이 교문에 앉아있던 나는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은 나의 일탈을 모를 거라 철썩 같이 믿은 채로. 집에 전화도 없으니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한 저는 학교 잘 다녀왔냐는 엄마의 말에 씩씩하게 잘 다녀왔노라 웃음 지었죠. 하지만 어찌 알 수 있었겠습니까... 마을 회관에 전화기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하여 누구네집 셋째 딸이 학교에 안 왔다는 전화가 왔다며 확성기를 통해 온 마을 구석구석에 전달되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말로만 듣던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시전 했던 미운 여덟 살의 기억. 아들아!! 너도 기억하렴.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매도 맞아본 놈이 때릴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