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가을은

by 이혜연
가을은, 가을은

낙엽이 물들수록

햇살은 투명해졌다


나무는 마지막 열매까지

튼실히 살 찌워

땅으로 내려

내일을 살게 하려고


햇님의 열정적인 붉음과

찬란한 노랑마저도

모조리 흡수해 버렸다


가득 채워진 가을이

투욱

길 위로 낙하하고 있다



우리 편하게 말해요


주말엔 되도록 아이들과 야외로 나간다. 요즘은 숲 속 도서관이 많이 생겨서 자주 가는 편이다. 창을 크고 많이 낸 덕분에 책을 읽다 잠시 한 눈을 팔아도 푸른 나무들과 눈을 맞출 수 있다. 그럴 때 자연은 아주 편안한 미소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것만 같다. 살면서 누군가 곁에 있는 것 만으로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문제는 나이가 들 수록 그 수가 가파르게 준다는데 있다.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대도 손에 꼽을 정도다. 예전에 슬세권이란 이야기가 있었는데 슬리퍼 신고 걸어갈 만한 곳에 좋은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걸 말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ㄴ놀이터에서 만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는 슬세권을 만들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 가는 오전 시간은 온통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말하자면 자발적 히키코모리가 된 셈이다. 혼자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오전은 너무 짧게만 느껴지고 항상 시간이 모자라 허덕이곤 한다. 이런저런 강의도 듣고 혼자 중얼거릴 때도 있다. 하지만 홀로 있다고 해서 나 자신을 더 실하게 꽉 채우지도 못한다. 어쩐지 속이 빈 강정 같은 느낌도 가끔씩 든다. 이럴 때 슬리퍼 신고 노천카페에 앉아 편한 친구와 실없는 농담 하며 존재의 가벼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익어서 내일을 준비하는 열매와 바람에 나부끼는 낙엽들에 대해서. (오늘은 아크릴 작업을 했는데 아직 미완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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