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듯, 그렇게

by 이혜연
당연한 듯, 그렇게

나무는 푸른 숲을

가슴에 담고

가지 끝의 잎들을

모조리 떠나보낸다


시간의 오고 감 속에

이별을 하고

그때 우리의 날들은

시간의 퇴적물로 쌓여

기억 한편으로 각인된다


그렇게, 어느 뒤척이던 밤

달빛에 비친 하얀 산그림자 뒤로

옛이야기 하나

조용히 잠이 들겠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 햇살 좋은 곳에 꽃사과는 벌써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름드리나무에 반짝이며 촘촘히 박힌 사과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향기롭게 느껴진다. 여름 내 이 나무에서는 매미 허물이 나무둥치부터 높은 가지 끝에까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긴 어둠을 뚫고 새 삶의 터전으로 이 아름다운 나무를 선택했던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두터운 그늘을 드리워주니 여름 한낮에 사람들에게 좋은 은신처가 돼주었던 사과나무에서는 자기 영역으로 무단침입한 이들을 향한 매미들의 노래 공격이 이어졌었다. 댐이 무너지듯 매미의 노랫소리가 쏟아져내리던 날들이 며칠 전이었던 것 같다.

바람이 바뀐 줄은 알았지만 더 이상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세레나데를 연주하던 매미가 사라졌음은 잊어버렸다. 7년을 기다린 생명의 노래가 막을 내렸음을 놀이터 벤치에 앉아있다 문득 깨닫게 되면 어쩐지 조금 쓸쓸해지곤 한다. 단순히 오가는 세월 같지만 잠시 한때를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하고 기다려온 짧은 생이 함께 길고 더운 여름을 견뎌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을 지겹다고, 힘들다고 투정만 부리던 내게 찬란한 그의 하루는 소중하고 아름다웠길 기도한다. 잊힌 계절처럼 쉽게 지워버릴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여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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