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열렸다

by 이혜연
가을이 열렸다


지친 몸으로 현관문을 여니

사람보다

찬 바람이 먼저

앞서 들어간다


들판의 늙은 호박도

주렁주렁 매달린 감도

빨갛게 농익은 사과도

차곡차곡 창고에 들이고


수고한 날들에 함께 한 이들과

작은 식탁에

향기로운 꽃을 꽂아 두고

따뜻한 저녁식사를 하리라


나에게 그림은'삶의 언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새 지금껏 살았던 날보다 더 많은 생을 살아내야 한다.

팔십이 넘은 시어머니께서는 평소에 부산시민공원을 매일 두 바퀴씩 걷고 경로당에서 친구분들과 점심을 함께 하고 나머지 시간에 10원짜리 고스톱을 치신다. 백내장 수술을 하시고 눈 건강이 조금 나쁘시지만 연세에 비해 아주 건강하신 편이다. 평소에 아프지 않고 주무시듯 가시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신다. 팔십이신데도 여전히 총명하시다.

하지만 어머님의 계획은 향후 몇 년으로 짧다. 그런데 바로 뒷세대인 우리는 팔십이 돼도 앞으로 몇십 년의 시간을 더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120살은 최소한이고 140살이 평균 수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스무 살이 되면 세상에 나가 멋지게 나만의 세계를 만들며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니 온실에 살다 야생에 나온 느낌이었다. 그것도 먹이사냥방법도 모른 채 야영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느낌이었다. 서른이 되니 내가 야영하고 있는 곳이 늪지대 같았다. 이를 갈며 발버둥 치려고 하면 할수록 매몰되는 느낌에 힘들었었다. 아무 노력 없이도 평안히 일상을 누리는 사람들을 가제비눈으로 질투했었다. 마흔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발목에 추를 달고 모래밭을 달리는 하루하루가 펼쳐졌다. 도무지 세월이란 놈은 날 어른으로 만들어 놓지도 않은 채 여전히 겁 많은 아이인 채로 작은 생명을 떠안고 다시 낯선 세계를 떠도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려 오십이 되니 지나온 길보다 더 긴 길을 앞으로도 계속 걸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몇 날 며칠 아니 몇 십 년을 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앞으로 칠십 년 동안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 고민했었다. 또한 내 삶을 스스로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서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그렇게 고심하고 고민한 끝에 한발 한 발 내디뎌 이제 577일, 나는 그림과 글을 쓰며 난나(나는 나다)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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