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가을

by 이혜연
어느날, 가을

타버릴 듯한 열정이

썰물처럼 흩어진 어느 날


가을이 왔다


적막한 들녘에

고요한 쓸쓸함이

가로등 아래 침잠해 있으면


멀리 마을에서

퐁당퐁당 아이들 웃음소리

잔잔하게 스며들고


빈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도 비로소

이별을 잊고 미소 짓는다



시골 동네 고샅에는 무심한 듯 꽃들이 심어져 있습니다. 봉숭아, 맨드라미, 달리아 그리고 담벼락 한편에 구절초까지.

아이들과 새벽부터 일어나 뒷산 어귀에서 밤을 줍고 아침을 먹은 후 옆집 할머니 텃밭에서 아이들과 고구마를 캤습니다. 그렇잖아도 시골마당 여기저기에 호미로 땅굴을 파놨는데 더 생산적인 일로 땅을 파고 과실을 얻으니 아이들의 함성이 마을을 떠들썩하게 합니다. 녹두 따는 할머니 곁에 가서 녹두도 따고 구덩이도 만들면서 신나게 농가의 일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니 시골살이의 로망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렇게 신나게 아침을 보낸 후 부모님 산소에 인사하러 가는 길. 구절초가 가을 들녘을 온통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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