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방

by 이혜연
따뜻한 방


책상 모서리에서 부서지는

작은 햇살들을 모아

화로에 넣고


너에게 들려줄

감자처럼 퍽퍽한 이야기

고구마처럼 달달한 이야기

우리의 작고 소소한

바람 한 편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싶다


너의 온기로 따스해진

겨울이 오는 밤에


초등학교는 처음이라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간 이후로 엄마인 나도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작디작은 몸으로 교문을 혼자서 훌쩍훌쩍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과 친구의 비밀이야기는 아무리 엄마여도 비밀인 채로 함구하고 있는 작은 입술을 보는 것도 신기하다. 자기와 똑같이 생긴 여자친구와 함께 급식실로 손잡고 나란히 걷는 모습도 마냥 귀엽다. 작년 어린이집 졸업발표회에 첫째는 백설공주 공연을 했었다. 백설공주, 왕비, 사냥꾼, 왕자 등등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 7번째 난쟁이 미남이가 배역이었다. 장장 두 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백설공주의 모든 대사와 동작을 외워대고 심지어 동생에게 까지 모든 대사를 외우게 했던 첫째의 대사는 "안녕, 난 미남이야!"였다. 모든 대사를 외우고 있는 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하게 짧은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혹여 자신의 분량이 적어 속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내심 어린이집 선생님께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일곱 난쟁이 중 미남이를 해야 했고 더군다나 사슴, 나무 등의 역할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아기자기 요정옷을 입고 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모든 대사를 완벽하게 외우는 아이를 보면서 좀 더 큰 비중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깨끗하게 없어지지는 않았었다.


드디어 졸업식 공연 밤.

둘째는 재학생 대표로 송사를 멋지게 해냈고 첫째의 공연이 막이 올랐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공연 당일 밤. 그 씩씩하고 당당하던 미남이는 사라지고 거기에 뻣뻣하게 굳은 채 흔들리는 눈동자를 주체를 못 하는 똥그리 로봇만 서있는 것입니다. 첫째의 무대공포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발을 구르며 동작을 하던 미남이의 손은 몸에서 떨어질 줄 모르며 끝끝내 "안녕, 나는 미남이야!"를 외쳐보지도 못한 채 미남이 실종사건은 미제로 남아 1년이 지나갔습니다.


오늘은 초등학교 들어간 이후로 처음 장기자랑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반전체 엄마, 아빠, 심지어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응원을 왔습니다. 미남이가 사라지는 시간, 그 마법의 시간에 드디어 뻣뻣하게 굳은 똥그리로봇이 나타났습니다. 일 년 전보다 말을 하기는 했지만 자기가 만든 책은 끝끝내 보여주지 못하겠다고 굳은 얼굴로 머리를 저어대는 미남이. 아!! 그 미남이는 왜 일 년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이렇게 공연하는 날에만 나타나는 걸까요. 그래도 학교에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예쁜 여자친구와 알콩달콩 달콤한 시간도 만들고, 신나게 축구를 해대는 우리 미남이가 있어서 너무 감사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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