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임에서 "혹시 성장할 때의 환경 탓에 지금 현재의 삶에도 영향을 받는 게 있느냐"는 물음을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있다고 했다.
나는 가정폭력이 있던 집에서 자랐고 아픈 언니가 있는 집에서 유년을 보냈다.
어떤 때는 가정폭력에 꼼짝없이 웅크린 채 두려움을 갖고 살았던 적도 있고 어떨 때는 닮지 말아야지 맹세했던 부분에서 부모와 비슷해진 상황을 보며 절망하기도 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유년의 환경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내 경우는 폭력보다 아픈 언니의 삶에서 더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삶이 주어지는 방식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고 살았었다. 왜 누구는 자유롭게 살아갈 육신을 주시고 어떤 이는 한순간에 자기 손으로 밥도 못 먹게 모든 것을 앗아가는 건지 궁금했고 화가 났다. 연민은 책임감이 됐고 능력이 부족함을 알았을 땐 죄책감으로 다가왔었다.
죄책감은 삶의 모든 것들을 무겁게 했다.
웃는 것도, 사랑을 주고받는 것도 내 것이 되기엔 너무 가볍고 보드라운 것처럼 느끼던 시절을 겪고 난 후 내가 느낀 건 그 모든 게 내 삶의 무게를 견디지 않으려는 자의 핑계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에게만 불행,
나에게만 고난..
이런 것들 속에 나를 숨겨두고 주어진 하루를 허투루 보낸 것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았었던 건 아녔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국 환경이라는 것도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따른 부차적인 문제인 건 아닐까?
유년의 환경이 나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지만 현재의 내 삶이 그것 때문에 불행하거나 행복한 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