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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Sep 26. 2022

가을  향기

거기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순간

가을 향기


너에게

전부를 줄 순 없어도

너를 향해

웃어줄 수는 있겠지


축 쳐진 그림자를 끌고 온 날

지나쳐가는 네 곁에서

은은한 향기를 건네며

곁에 조용히

앉아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길모퉁이에서

잠시 우리

스치더라도

작은 미소와

향기를

서로에게 건네며

인사할 수 있기를



몇 년 전 이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한일이 마당 한편에 화단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욕심 사납게 남천이며 수국 맥문동 국화  제라늄 등을 화단 가득 빼곡히 심었었습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햇살이나 물 주는 주기도 파악 못 한채 말이죠. 그랬더니 생태가 안 맞는 것들은 모두 제게 이별을 고했습니다. 어리석음의 대가겠지요.


그렇게 떠난 아이들  뒤로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세를 늘리던 국화가 꽃을 피웠습니다. 덕분에 작은 생명들도 여럿 있는지 싸늘해진 밤이 되면 제법 느낌 있게 귀뚜라미 소리도 들려옵니다.


식물들도 자기가 좋아하는 환경이 있어서 함께 있어도 어떤 것들은 번성을 하고 어떤 것들은 생명을 다해버리기도 합니다. 그걸 맞추고 살펴주는 일이 키우는 자의 몫일 텐데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하고 있네요.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한 화분에 자라는 꽃이 아니라 정원을 두고 거닐게 되는 마음밭은 외부에서 날아든 작은 풀씨도 금세 싹을 틔우고 다른 꽃들을 방해하곤 합니다. 가장 골칫덩이는 덩굴식물인데 처음엔 연약하고 가느다란 손을 슬쩍 기대 오다가 결국엔 칭칭 감아 숙주인 식물의 숨통을 조여옵니다.

내 맘속에서 나를 옥죄는 덩굴식물 같은 말들은 무엇일까요?

착한 사람 콤플렉스, 장녀 콤플렉스, 원더우먼 콤플렉스 같은 것들은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치를 넘어선 책임감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무심코 날아든 풀들은 내가 뽑아주고 덩굴식물들도 다른 꽃들에 기생하지 못하도록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가끔씩  정원을 둘러보며 어떤 걸 키우고 어떤 걸 제거해야 하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부디 우리 마음 정원에 아름다운 꽃들이 활짝  피어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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