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못내 미련을 못 버린 듯 눈도 아닌 것이 비와 함께 추적추적 내리는 날입니다. 겨울이 겨울다웠다면 아쉬움도 덜 할 것을 지나간 계절이 남겨둔 이야기를 말하지 못한 채 포기하듯 돌아서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뭔가 가슴에 하나씩 말하지 못하는, 혹은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입 밖으로 내었을 때 현실이 될까 봐, 아니면 다시 한번 상처를 주게 될까 두려워 차라리 돌아서기를 선택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때 상대에게 주는 상처만큼 가슴속에 간직해야 하는 자신의 아픔 또한 만만치 않음을 살면서 느낄 때가 많습니다. 며칠째 미련스러운 겨울비 덕분에 몇 해 전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습니다. 아무것도 못 드시고 못 주무시며 뼈만 앙상하게 남게 된 날 엄마를 모시고 있던 언니는 요양병원으로 엄마를 입원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평소의 엄마라면 절대 안 갈 거라고 말씀하셨을 텐데 뭔가 체념한 듯 고향집 대문만 물끄러미 보시고 힘없이 요양원으로 가셨습니다. 그때는 코로나가 한창이라 요양원 정문에도 보호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고 일주일 뒤, 너무나 허탈하게 혼자 돌아가셨습니다.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들이 내리는 날들. 미련이기도 하고 후회이기도 한 눈물 같은 날들이 생각납니다. 돌이켜보면 아쉽고 후회되는 날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지난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장고에 장고를 더해도 답이 없는 일들도 만나게 됩니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겨울도 아니고 그렇다고 봄도 아닌 날처럼 그런 기로의 날들은 우리의 인생에 전환점이 오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날들에 최선의 선택은 결정한 것에 대해 깨끗이 인정하고 돌아보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