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영청 밝은 달아

by 이혜연
휘영청 밝은 달아

겨울 동안 묵혀둔 시름은 어제 눈으로 다 쏟아붓고 다시 햇살을 내어 깨끗하게 청소가 된 겨울 거리. 그 위로 크고 둥근달이 뜨려고 한다. 가로등도 없던 어린 시절 보름에는 달빛에 길을 걸어도 될 만큼, 밤이 무섭지 않을 만큼 따뜻한 노란 어둠이 있었다. 보름은 농촌에서 큰 명절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사물패를 조직해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한 해의 복을 전달했고 아이들은 빈 깡통을 주워 못으로 구멍을 뚫고 쥐불놀이를 준비했다. 지푸라기로 액막이 인형을 만들어 논두렁 어딘가로 사람이 쉬이 다니지 않는 구석으로 던져놓고 액막이를 했었다. 음력설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도 소소한 잔치음식들이 차려졌다. 나물을 좋아하는 편이라 고구마 줄기나 호박고지, 토란잎 나물 등이 올라오는 밥상이 유난히 맛있었다. 또 한 해 받을 복을 모두 모아놓은 듯한 오곡밥은 얼마나 맛있었던지.. 엄마가 돌아가신 후 마트에서 건나물 불린 걸 사 먹었었는데 요즘은 손이 잘 안 간다. 그리고 아이들이 건나물은 잘 안 먹어서 요리를 더 안 하게 된다. 대신 겨울의 대표 건강식 반찬인 톳과 시금치나물을 하고 수수와 조, 각종 콩을 넣어 오곡밥을 하려고 한다. 도시의 밤이 너무 밝아 달빛을 즐길 여유가 없지만 그래도 아이들 손잡고 달님에게 올 한 해 우리의 소망을 빌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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