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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와 바다

by 이혜연
아줌마와 바다

밤새 봄 바다가 몸살을 앓았다. 미친듯한 절규와 할퀴어대는 바람으로 새벽은 무서우리만치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늦은 밤까지 해변에 텐트가 몇 있었는데 자고 있는 사이 모두 떠났는지 커다란 백사장에 위태롭게 우리 텐트만 남아 밤바다의 앓는 소리를 견뎌야 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얇은 텐트는 누군가가 미친 듯이 두드리는 소리를 그대로 전달해 주며 잠을 멀리 쫓아내버렸다. 이대로 우리 식구 모두 날아가 버리면 어쩌지? 저 깊은 어둠 속에서 혀를 날름이듯 일렁이는 검은 파도가 연약한 우리를 덮치면 어쩌지? 그런데도 지퍼를 열고 나가볼 엄두가 안 난다. 아무도 없는 이른 해수욕장의 밤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속에서 신의 채찍처럼 휘두르는 바람에 얼굴을 들켰다가는 지난 나의 과오들이 한꺼번에 몰아치며 죄를 물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숨죽이며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감싸 안고 난폭하고 무시무시한 바람을 듣지 못하게, 작고 평온한 우리 똥그리들의 잠을 방해하지 못하게 더 꼭 껴안아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은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아놓고 불려놓았던 원수 같은 내 살들이 광란의 바람에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의 무게감을 주어 배가 닻을 내리듯 그렇게 가벼운 텐트를 단단히 붙잡아두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중년이 되며 빼려고 해도 도통 빠지지 않던 두툼한 지방들 덕에 새벽의 거친 바람에도 육지를 벋어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혼자 사투를 하며 밤을 새우고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투투투투 툭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새벽 6시. 일기예보에서 오전 10시에 온다는 비가 서둘러 내리고 있었다. 신랑과 나는 급하게 일어나 우비를 챙겨 입고 아이들과 짐들을 옮기고 텐트를 접기 시작했다. 비 오는 봄 바다. 미칠듯한 바람과 사선으로 때리는 비를 맞으며 마치 참치를 잡으려 안간힘을 쓰던 노인처럼 우리는 폭풍우에 요동치는 텐트를 잡으려 사력을 다했다. 폭풍우가 몰려오는 바다에서의 하루를 사력을 다해 이겨내는 동안 아침이 밝아왔고 비도 조금씩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다행히 근처에 제부도 어촌계에서 쳐놓은 그늘막이 있어서 추워하는 아이들을 다시 텐트를 만들어 들여보낸 후 따뜻하게 밥을 해서 먹이고 짐을 정리한 후 제부도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집에 오니 온몸이 쑤시고 팔을 들 수가 없었다. 아이들과의 추억 한 스푼을 위해 50이 넘은 엄마는 사력을 다해 오늘을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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