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연 May 14. 2024

두려워하는 너에게

두려워하는 너에게 

뇌는 하늘보다 넓다

나란히 놓아 보면

뇌 안에 하늘이 쉽게 들어가고

더구나 당신까지 들어가니까


뇌는 바다보다 깊다

푸른 것에서 푸른 것까지 담아 보면

뇌가 바다를 흡수하니까

스펀지처럼 양동이처럼


뇌는 신의 무게와 같다

나란히 들어보면

혹시 다르다 해도 그 차이는

음절과 음성의 차이 정도일 테니까

 

        - 에밀리 디킨스



평소에 이 닦는 것을 게을리하던 첫째의 어금니 영구치가 썩어서 치과를 가는 날이었다. 하교하자마자 자전거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첫째가 요즘 두려운 것들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했다. "엄마, 난 요즘 야생 진드기가 무서워. 뉴스를 보니까 실제로 야생진드기에 물려서 한 사람이 죽었대!", "엄마, 난 죽는 게 무서워. 죽으면 모두 흙으로 돌아가잖아. 아무것도 기억 못 하고.""엄마, 태권도 관장님이 우산을 빌려주려고 펼치다 우산 살에 찔려서 병원에 가서 치료했대. 너무 무섭지 않아?"

얼굴이 동그랗고 귀여운 보조개가 있으며 조심성이 많고 배려심이 깊은 첫째의 요즘 두려운 목록들이다. 확률적인 계산이나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기에 처음 피부로 느끼게 되는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이 9살 인생을 흔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오십이 넘어도 죽는다는 것은 무섭다. 죽음 이후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두고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의 연결고리를 표현할 방법이 끊기는 것 같기 때문이다. 사실 나야말로 어리고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이 있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은 지금이기에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수시로 솟아나는 욕심으로, 갈증을 일으키는 혀를 망각의 샘물로 적시며 내일, 또 내일이 계속되리라 속삭인다. 


첫째의 두려움에 대해 나는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달리는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삶은 원래 유한하다는 것, 가능성으로 보면 진드기에 물려서 죽는 건 자전거에 치여 죽는 것보다 더 희박하다는 것, 그리고 치료나 해결책이 없는 경우가 두려운 거지 어떤 사건이 벌어지든 해결책이 있는 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문제는 답을 구하는 일이 어떤 일에 있어서는 지난하고 많은 인내를 요구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두려움 대신 한발 한발 지치지 않고 내딛는 용기가 살면서 꼭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며 치과치료를 끝내고 태권도장에 첫째를 내려주었다. 그리곤 혼자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 수없이 닥칠 두려움과 문제에 대해 엄마로서 더 현명하게 말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십 대 때 나는 정말 두려운 게 많았었다. 오늘 첫째만큼이나 세상은 위험천만한 것이고 언제 어디서 돌이 날아올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불안하고 무서운 곳이었다. 그렇게 두려워하는 날들 중에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책이지만 그 책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두렵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떤 것을 하려고 할 때 한 발자국도 못 떼는 이유는 수십 가지가 될 수 있다. 준비가 안 돼서, 지금은 때가 아니라서, 도와줄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라는 말들은 어쩌면 스스로가 두려움의 뒤에 숨으려고 만들어놓은 함정일 수도 있다. 나는 첫째가 그 두려움 때문에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믿으며 오늘, 그리고 또다시 다가오는 오늘을 완성해 나가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더 많이 실패하고 힘차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삶을 살기 원하며 하루하루 꾸준히 자신을 완성하며 살아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와의 약속을 스스로 지키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현명한 말은 아직 생각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녀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