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보면

by 이혜연
뒤 돌아보면

문득 가던 길 중간 어디쯤

뒤 돌아보면

어느 때쯤이 즐거웠었던 건지

돌부리에 넘어져 아팠던 곳은

어디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저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스치듯 그림자가 어른거렸을 뿐

여전히

길 속에 있다


돌아볼 곳도

머물러야 할 곳도 없이

다시 오늘치만큼의 거리를

나는, 걷는다



텃밭 공부


어렸을 때 누군가 내게 아빠가 뭐 하시냐고 물으면 '농사지으신다'라고 말하며 나는 '농부의 딸'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고추를 심을 때, 여름 땡볕에 고랑을 따라 고추를 따다 쓰러졌을 때, 추석 즈음 고구마를 캐서 리어카로 싣고 왔을 때,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집 담벼락에 비스듬히 말려놓은 참깨단에 비닐을 급하게 씌웠을 때 나는 농부의 딸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추, 고구마, 감자등을 거둬봤으니 그것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그마한 텃밭 정도 우습게 알았다.


열무를 심었고 시금치, 아욱, 고추, 오이, 가지, 토마토, 깻잎, 감자, 멜론 수박을 겁 없이 조그만 틈 바구니마다 심어뒀다. 잘 자랄 거라 생각했던 작물들은 다른 밭의 작물들에 비해 보잘것이 없었다. 커피로 퇴비도 만들어보고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물을 주러 다녔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었다. 사전에 내가 심게 될 작물에 대해 공부는 필수였다. 다른 누군가 물심양면으로 돌보고 키운 열매를 거두는 일은 제대로 된 농사를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감자에는 물을 많이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 고추는 충분히 거리를 두고 심어야 한다는 것, 작물을 심기 전 15일 정도 전에는 퇴비를 충분히 주고 땅을 쉬게 두어야 한다는 것을 공부했어야 했다. 심지어 배추씨의 종류만 몇 가지가 되고 저마다 맛과 성질이 다르다는 걸 알아야 했다. 농사는 내가 아는 만큼, 내가 돌보는 만큼 바로바로 결과가 달라지는 나의 자질을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곳이다. 땅을 돌아보면 그곳에 내가 뿌린 씨앗과 그것에 대한 성찰이 고스란히 과실로 맺혀있다.


오늘도 땡볕을 달려 텃밭에 다녀오는 길.

돌아보면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을 채워야 할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한 평 텃밭도, 수많은 세상사도 그냥 되는 건 절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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