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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Jul 08. 2024

꽃을 선물할게

꽃을 선물할게


어렸을 때 나는 아주 아주 겁이 많았다. 

마당을 가로질러 돼지우리와 외양간 사이 커다란 항아리위에 긴 막대기 두 개 놓여있는 우리 집 화장실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그 작은 마당에 닭과 오리, 강아지, 염소, 돼지, 송아지가 다 들어차있었고 화장실 앞엔 항상 뒤엄이 쌓여있어 냄새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화장실 가는 건 언제나 고역이었다. 그나마 좋았던 건 대문 바로 옆에 항상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아가 담벼락 바로밑에 나란히 피어있곤 했다. 


중학교 때쯤 우리 마을에 자전거 바람이 불면서 비슷한 나이또래 아이들은 모두 자전거를 타고 고 등교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겁이 많은 나는 자전거가 무서워 혼자 걸어서 가거나 친한 동네친구 자전거 뒤에 타고 함께 등교하기도 하고, 어떨 땐 교회오빠가 데려다줄 때도 있었다. 그중에 가장 많이 신세를 진 건 역시 동네 여자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보다 키도 컸고 자전거도 잘 탔기 때문에 아침저녁으로 나를 싣고 다녔었다. 하교하고 와서는 함께 빨래도 하러 가고 나물도 캐러 가며 단짝처럼 잘 지냈는데 한번 마음이 틀어지면 입을 꼭 다물고 말을 안 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당 한편의 꽃을 꺾어 그 친구집으로 갔다. 마음이 불편한 걸 못 참는 성격에 내가 잘못이 없을 때도 항상 먼저 사과하며 꽃을 선물했다. 


그러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를 가며 헤어졌고 그 친구는 25살에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낳았다. 하지만 시골동네 친구였기 때문에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추석이나 설날에 항상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었다. 친구와 내가 어렸을 때 이야기로 낄낄대고 있으면 친구신랑이 와서 항상 나에게 핀잔을 주곤 했다. 그 이유는 내가 자기 와이프에게 항상 먼저 미안하다고 사과했기 때문에 남편인 자기에게도 사과하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다'라고 말하면서 아직도 부인이 그렇게 좋냐며 놀려대곤 했었다. 그러고 나서 사과를 할 줄 모르는 부인이라고 핀잔주지 말고 꽃을 선물하는 법을 배우라고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긴 비가 여린 꽃잎들을 다 녹여내버리고 있다.

요즘은 누군가에게 꽃을 선물할 일이 적어졌는데도 

꽃이 시드는 건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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