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라고 인지하고 있었지만 요즘 정말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새벽녘에 빗소리에 가위눌린 듯 악몽을 꾸기도 하고 눅눅해진 실내가 더없이 기분을 가라앉게 하기도 합니다. 아침에도 아이들 준비시킬 때까지는 비가 안 오더니 함께 대문을 나서는 순간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습니다.
오늘은 방학을 하는 날이어서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신나게 등교를 했습니다. 아이들을 바래다주고 집으로 들어서니 담벼락에 푸르게 빛나는 등나무가 보입니다. 작년 잠시 마당을 소홀히 했을 때 어느샌가 남천의 몸을 휘감아 숨 막혀하는 나무를 본 후로 등나무의 가느다란 촉수는 언제나 관리의 대상이었습니다. 물폭탄을 제대로 준비한 이번 장마 덕분에 마당에 둔 여린 식물들은 녹아버렸고 잘 자라고 있던 다육이들도 힘없이 잎을 떨구는데 등나무만 혈기왕성해져서 저번 비에 끊어낸 작은 덩굴들이 이번 비엔 더 많은 가지를 내어 허공을 붙잡고 늘어섰습니다.
무서우리만큼 강한 생명력이고 징그러울 만큼의 삶에 대한 집착이 느껴져 괜히 미운 마음에 여린 가지들을 톡톡 끊어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내 맘 속에 자라는 등나무 같은 감정들은 뭐가 있는가. 아무것도 의지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는 나를 바로 세우며 살고 있는가. 허공을 더듬거리는 저 무지가 스스로 서지 못함으로 인한 것은 아닐까. 나는 인생의 장맛비를 견딜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마음까지 들면서 내가 등나무의 여린 가지를 꺾어낼 자격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마당의 남천, 단풍나무, 미스김라일락, 다육이들, 봉숭아, 채송화, 천일홍들도 이 비를 견디며 오늘을 살고 있는데 장대비 가릴 집이 있고, 예쁜 웃음을 건네주는 아이들과 팔을 휘감아 안아주는 신랑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오늘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