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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도 즐거워라

by 이혜연



"인간은 욕망하기 때문에

욕망할 이유를 찾는다. "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중에서


요즘처럼 더위로 허덕이는 날엔 카페와 도서관이 좋은 휴식처가 되곤 한다. 두 군데 카페에서 내 가방과 그림을 판매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개씩은 항상 판매가 되고 있어서 인연이 되어주신 사장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그런데 이번에 집 앞에 있는 카페가 폐업을 하게 됐다. 단골도 많고 손님들도 카페 사장님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건물주와 재계약이 안 되신 것 같다. 항상 무슨 일이 있으면 이야기하고 함께 응원해 주며 버팀목이 돼주셨는데 마음 한구석이 벌써부터 허전해진다. 더군다나 첫째 아이와 친하게 지내는 아이도 원주로 이사를 가게 돼서 그렇잖아도 좁은 인간관계가 더 협소해질 예정이라 아쉬움과 쓸쓸함이 몰려왔다.


더위의 정점에서 맞이하는 가을의 입구.

모두 떠나간 자리에 누군가와 이어질 인연이라도 있는 것일까..


"행복한 인생을 결정짓는 진정한 가치는

고통을 잘 견뎌내는 인내력에 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중에서


폭풍에 잔 가지가 부러지듯 사람이 끊기기도 하고 진행하고 있던 일들이 중단되기도 한다. 쇼펜하우어가 인생은 고통이라고 했던 말처럼 생각하기에 따라 힘들고 지치는 상황들은 끊임없이 반복되곤 한다. 그럴 때 내가 선택하는 것은 무심이다. 그냥 유속에 맡기고 흘러가야 하는 것, 흐르게 놔둬야 하는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가게 하는 것이다. 슬픔이나 두려움도 없고 기대와 희망도 갖지 않는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문 앞에 다가왔다고 슬퍼할 이유나 가슴 콩닥거리며 기대할 것도 없는 것처럼 그렇게 계절을 보내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듯 머물거나 스쳐가는 인연들에 그때그때 감사하고 무심히 손을 놓는 것은 그들에 대한 애정이 없거나 더 이상 설렘이 없어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때로 과한 슬픔, 끝 모를 자괴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좌절을 가져오기 때문에 다시 만날 때 어색해질 수도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저 무심히 이별을 받아들이다 보면 계절이 돌고 돌듯이 헤어질 때처럼 다시 만나지길 기도하며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다시 만나지는 날엔 무심하였기에 뜻밖으로 더 즐거울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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