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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에 준비하는 가을

by 이혜연
여름 끝에 준비하는 가을

장마가 끝나고 일주일정도가 지났을 무렵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내 먹거리를 제공해 주던 상추, 토마토, 아욱들을 뽑아내고 땅을 갈아 거름을 뿌려두었다. 통상 2주 정도 땅을 쉬게 해 주어야 가을 농사가 풍성해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주말 내내 아이들과 함께 물놀이장에 있었기에 아이들 등교를 시켜주고 바로 텃밭으로 갔다. 가을이 사립문 밖에 아직 머무르는지 지금도 자전거로 텃밭까지 가면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괭이로 땅을 고르고 이랑을 파서 가을에 거둘 씨앗을 뿌리는 동안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후드득 땀이 쏟아져냈려다. 이렇게 땀을 흘리다 보면 반건조 오징어처럼 홀쭉해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흘렸을 때쯤 텅 비어있던 텃밭에 상추, 시금치, 아욱, 열무씨가 땅 속으로 무사히 안착했다.


사람이 살아갈 때 필요한 요소가 많이 있지만 그중에 한 수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을 살면서 어떻게 미래를 점치고 예측해 준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반복되는 삶 속에 일정하게 거쳐야 하는 일들이 정말 있다면 그건 이치에 맞게 그때를 준비하는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보름달이 완성되면 다음은 달이 비워지는 시간이 온다는 것이 자명한 것처럼 여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그 시점이 바로 가을에 거둘 열매를 거두기 위한 씨를 뿌리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씨를 뿌리는 행위는 언제나 그것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믿음 위에서 시작된다. 오늘 나는 새로운 계절을 위한 기도의 씨앗을 뿌려두고 왔다. 풍성하게 거둬들일 가을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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