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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Sep 26. 2024

그대 그리운 날에

그대 그리운 날에

섣불리 금단의 열매를 맛본 것처럼, 향기로운 낙원의 문을 성급히 열어버리고 돌아갈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늦더위가 야속하고 진절머리 난다. 중년의 여름은 지옥불 같고, 끝없는 갈증 속에서 애가 타게 하는 나날이었다.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하게 원할수록 비웃듯 해가 뜨면 다시 태양, 자고 나면 다시 등줄기를 가르는 땀범벅인 날씨가 되었다. 


요즘 그림을 그리고 나서 전시를 위해 물감작업을 하면서 지칠 때마다 커피를 마시는 데도 자꾸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에도 관성처럼 몸을 움직인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채로 오십여 년을 살아왔다. 그런데도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가을 때문일까, 아니면 몸이 지치니 마음도 허물어져서 그러는 걸까. 정신을 차리려면 다시 커피를 마셔야 하는데 늦은 오후의 그것은 악마의 잔이 되어 내게서 잠을, 나의 치부를 가리지 못하게 어둠을 하얗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초점을 맞추려는 건 너무 힘들고 어리석은 일이 될 테니 잔을 들어 어리석음을 한 모금 마셔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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