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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Sep 25. 2024

핑크빛 우울

핑크빛 우울

"행복은 빈도이지 강도가 아니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에서 어떤 심리학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행복은 자신이 그것을 느끼는 빈도이지 얼마만큼의 양이 와야만 채워지는 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취향에 맞는 커피를 마시거나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갔을 때, 혹은 위로가 필요할 때 자판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채울 수 있다. 그리고 그 처럼 사소하고 작은 어떤 것들이 자주 채워질수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이들 등교시킨 후 자전거를 타고 텃밭으로 갔다. 종종 비가 와 주었기에 자주 갈 필요가 없었지만 예전에 엄마가 농작물은 주인 발자국 소리에 큰다는 말이 항상 머릿속에 남아있기 때문에 서로의 안부를 정기적으로 물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몇 번의 비로 하늘은 훌쩍 높아졌고, 바람 또한 시원해져서 가을을 실감하며 밭에 도착해서 보니 듬성듬성 벌써 풀이 나있었다. 배추는 15개를 심었지만 10개만 살아남았고, 열무는 반은 죽고 반은 살아 튼실히 자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쁜 건 대머리 머리카락 세 듯 듬성듬성 난 당근들이었다. 뜨거운 날들 중에 심었기에 모두가 녹아 없어졌을 거라고 말했지만 기적처럼 10개 정도가 싹을 틔우고 세상에 얼굴을 디밀어줬다. 어찌나 반갑고 기쁘던지 갑자기 행복 수치가 훅 올라갔다. 감사하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매일 그림을 그리는 나는 어쩌면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행복하기도 하고 핑크빛 우울을 느끼기도 한다. 원하는 색깔과 표현하고자 하는 느낌이 제대로 나온 날은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했다는 느낌에 한껏 부풀었다가 아무리 쥐어짜도 어떻게 그려야 할지, 혹은 보는 사람들이 뭔가를 느끼는 그림을 그리려면 어떤 걸 담아내야 할지 모를 때는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것은 나아가는 중이라는 기쁨인 동시에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슬픔, 혹은 좌절의 쓴맛을 느끼게 되는 핑크빛 우울이다. 매일 그 푸른 희망과 핑크빛 우울을 오가는 진동추처럼 그렇게 흔들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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