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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Oct 18. 2022

미명

비록 쪽배일지라도



아침은

아직인데

항구에

배를 띄운다


따스한 불빛

뒤로하고

파도가 울렁이는

오늘을 향한다


물고기를

잡을 수 있을

만선 할 것 인지

걱정하지 않는다


배는

파도를 헤치고

바다로

바다로

그물을 던질 것이다


그러다

해가 지면

환한 불빛이 있는

네가 있는 곳

그곳에서

밤을 맞이할 것이다



어렸을 적 나는 푸른 새벽을 걸어갔던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 전날이 생일인데 그때 꼭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예배가 크게 열렸다. 

한 달 이상을 찬양과 율동을 준비하고 새벽송을 돌기 위해 준비했다.

문제는 아빠가 교회 다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다.

더  큰 문제는 엄마는 세상 두쪽이 나도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믿음의 성도셨다.


 지구상의 가장 큰 문제와 전쟁은 종교 차이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가장 작은 사회인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종교문제로 발발하는 다툼은 흡사 전쟁을 방불케 했다. 포탄이 터지듯 장독대가 날아갔고 총칼을 들이대듯 서로를, 아니 일방적으로 엄마를 향해 겨눠졌다. 일반 서민인 자식들은 두 진영의 싸움에서 숨거나 혹은 대항하거나 하는데 나는 단연코 대항하는 쪽이었다. 무섭게 대들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 날 새벽에 엄마랑 둘이서 새벽에 쫓겨나 눈 쌓인 논길을 하염없이 걸어갔던 적이 있었다. 엄마도 멍이 들고 나도 멍이 든 채로 걷고 있는데 그때 하얀 눈 위로 파란 새벽을 본 적이 있다.


정말 비현실적인 파란 세상 속에서 더듬더듬 눈 쌓인 새벽을 지나 아침을 향해 걸었었다. 

그 새벽에 시골에서 돈도 없이 맨몸으로 쫓겨나 어딜 갈 수 있었을까?

전쟁에서 패하면 난민이 되듯 엄마와 나는 갈 곳 잃은 난민이 되어 새벽길을 걸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나는 참 그 새벽의 푸름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슬펐고, 아팠고, 살을 에이는 새벽바람이 쓰라렸지만 그래도 참 신비한 파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왜 태어났을까.

매번 반복되는 대치 상황에서 한 번도 승자로 기록되지 않은 전쟁을 치러야 하는 나는 

그 속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때 내 삶의 기둥은 아마 내 기도제목이었던 것 같다. 

내가 마흔을 산다면(국민학생이 생각하는 마흔은 거의 신선의 경지라는 것) 그중 스물까지만 내가 살고 나머지는 언니에게 주고 싶다는 기도였다. 그게 어린 나의 기도 제목이었다.

누군가는 당연히 살아지는 것들을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하고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게 슬펐다. 

내 탓인 것 같았고 그래서 당연히 엄마의 바람과 내 기도의 염원으로 우리는 몇 번이고 전쟁의 패자가 되곤 했다. 

결국 내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애초에 이뤄질 일이 없는 기도를 어린 마음에 했던 것을 알았지만 그 기도 하나로 새벽길이 무섭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냥 아름다운 새벽길을 엄마와 걸었던 거였다. 뭐 사연은 있었을지라도... 그리고, 사연은 언제나 있는 거니까.  

그때 우린 그렇게 새벽을 걸어 멀리 떨어진 작은 집으로 가서 아침밥을 얻어먹었었다. 


우스운 건 내 기억 속에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는지에 대한 기억보다 새벽의 파란빛이 신비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것과 작은 집에서 뜻하지 않은 아침 손님을 위해 김을 구워주셨는데 그게 정말 너무 맛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붙잡지 않는 이상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은 잊어버리는 선물을 신에게서 받은 듯하다. 문제는 자기 스스로 악착같이 자신의 불행을 놓아주지 않은 채, 그 안에서 머물며 모든 아침과 신이 주신 선물을 거부하면서 자신이 자신의 삶을 이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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