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인지, 아니면 봄보다 더 화려한 낙엽들의 색색의 노래 덕분인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말랑해지면서 발이 경쾌해지는 날들이다. 산책을 하며 올려다본 하늘은 어제보다 더, 그제보다 더 높이 높이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노란색, 붉은색으로 편평히 떨어지는 길은 꽃가루를 날리는 것보다 화려해서 걷고 또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여름의 무자비한 폭력 같던 햇살도 말갛고 청순한 가을볕에 모두 잊었다. 그렇게 멋진 날들이 있기 때문일까 가을은 축제도 많고 행사도 끊이지 않는다.
오늘은 두 아이의 운동회 날이다. 몇 주 전부터 운동회 이야기를 하더니 어제는 간식 타임 때 먹을 간식을 고르느라 밤새는 줄 모르게 마트 과자 코너에서 고심을 하며 함께 나눠먹을 간식을 골랐다. 아침엔 신나서 학교로 달려가는데 아이들이 들뜨니 어렸을 적 운동회 생각이 나면서 마음이 간지럽게 일렁인다.
국민학교 때 운동회는 전 학년이 함께 여러 가지 행사를 하며 마을 전체, 아니 읍내 전체 행사가 되곤 했다. 몇 달 전부터 부채춤을 연습하고 족두리를 쓰고 저고리를 입어보고 오자미를 만들어 학교에 제출하기도 했다. 내가 만든 오자미로 박 터트리기를 하면 마침내 쩍 갈라진 박속에서 색색의 꽃가루들이 얼마나 화려하게 춤을 추는지 작은 마음들이 덩달아 춤을 추었었다. 어른들도 나름 신나는 잔치였는지 운동장 나무그늘에 돗자리를 깔고서 집에서 쪄온 고구마, 밤을 보자기에 싸들고 오시기도 하고 단감이나 땡감을 우린 감을 간식으로 싸 오곤 하셨다. 그때만 해도 김밥이 흔하지 않아서 소풍 때나 운동회 때 분홍소시지를 넣은 김밥을 싸 오셨는데 그때 그 김밥은 정말 천상의 맛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운동회 중간중간 죽 둘러선 돗자리 중에 엄마가 앉아있는 돗자리를 찾느라 기웃기웃하다가 드디어 그리운 얼굴이 확인이 되면 얼마나 설렜던지... 아이들 운동회 때 돌아가신 엄마 얼굴이, 젊고 예뻤던 어린 엄마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요즘은 학교에 간식 같은 것을 싸들고 갈 수없으니 아쉬운 대로 커피 한잔을 텀블러에 타서 아이들을 찾고 응원하고 사진을 찍었다. 1학년은 노란색, 2학년은 연두색 단체티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섞여있었지만 아무리 섞어놓은들 예쁜 내 아이들을 못 찾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어도 내 눈에는 너희들만 보였다. 입담이 좋은 전문 진행자가 오셔서 정말 재밌고 신나는 운동회를 함께 했다. 중간에 비가 와서 운동장에서 하다가 강당으로 옮겼고 거기서 학부모 참여 경기도 했다. 그러다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격인 계주는 다시 운동장에서 했는데 업치락 뒤치락하는 승부와 막판 역전승은 정말 손에 땀이 날 정도로 명승부였다. 그렇게 부모와 아이들 모두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 운동회가 끝나고 아이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행사는 마무리했다.
똥그리들아!
비가 오고, 변수도 많았던 오늘이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얼굴에 함박웃음을 띈 채 이겨도 응원하고 져도 격려하면서 달리고 신나게 즐겨준 너희들이 챔피언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