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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연 Oct 25. 2022

너의 가을을 마시고 싶어

파란 가을 맛

너의 가을을 마시고 싶어



누군가를 기다리듯

두텁게 

화장하고 앉아있는

맨드라미


여름의 화석처럼

처음, 그때처럼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


어제의 뜨거웠던 

태양을 기다리지만

바람은 식었고


속삭이던 잎들은

거리를 뒹굴고 있다



뜨거웠던 그날 

그 여름의 기억에 기대어

오늘,

너의 가을을 마시고 싶다




 아침에 잠깐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카페 야외테이블에 눈이 갑니다. 

어느 날은 정다운 몇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가 얼핏 얼핏 들렸다가

어느 날은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은 마지막 가는 길을 조용히 묵상하듯 빨갛고 노란 낙엽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눈부신 가을날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하늘을 봐도 감탄사가 나오고 나무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괜스레 지난여름, 싱그러웠던 추억들이 이젠 다 지나가버린 옛 기억이라는 것에 조금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가을 하면 어떤 장면이 가장 생각나세요?

저는 늦은 가을 퇴근길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맑은 어느 가을날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첫 번째 퇴근길의 장면은 무수하게 떨어지던 은행잎들을 본다고 한 시간을 거리에서 서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밤하늘로 차가운 바람이 안내하는 길로 쏟아져내리던 은행잎들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한 시간을 나무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몸은 점점 식어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지금도 그날의 그 장면을 떠오르면 저는 왠지 슬픈 행복함이 밀려오곤 합니다. 

두 번째 맑은 가을날은 정말 쨍하게 예쁜 하늘과 오색의 단풍들이 너무 아름다웠던 날이었습니다. 

아직 돌이 갓 지난 둘째와 첫째가 3돌을 막 지날 무렵 엄마는 여러 번 응급실을 다녀왔습니다. 

췌장암은 속도도 빨랐고 지병이 있었던 엄마는 수술이 불가했습니다. 

엄마랑 함께 하는 가을이 이번 해가 마지막일지 다음 해도 함께 하게 될지 모르는 그런 날들이었는데

너무나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서 슬펐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더 많은 날들을 함께하고 싶었지만 아마도 엄마도 나도 그날의 알록달록한 가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아요. 

엄마의 희미한 미소도 나의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조여 맨 웃음도 이젠 그날의 낙엽처럼 추억으로만 남게 됐습니다. 이젠 다른 곳에서 오늘의 가을을 즐기고 있을 엄마와 여전히 아름다운 지금 여기의 가을 속에 앉은 나.

다시 한번 엄마의 행복한 가을을 기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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