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겨울 들판에 나왔다. 첫눈이 너무 거창하게 온 건지 하늘이 건조하다. 민심의 바닥이 쩍쩍 갈라지듯 눈이 없는 겨울도 황폐한 느낌이다.
사람이 만든 작은 눈 언덕에 아이들이 따개비처럼 붙어 겨울 성을 짓는다. 하지만 햇살이 너무 따스하다. 봄은 고양이 걸음처럼 온다고 했던가. 이렇게 따뜻한 날이 더 이어지면 겨울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뜬금없이 준비 없는 봄이 올 것만 같아 두렵다. 사람의 일이든 자연의 규칙이든 쉼표 안에 깃든 철저한 자기규정과 반성이 있은 후에 계절이 바뀌어야 뒤탈이 없을 것 같은데 요즘은 무력한 우울이 도시를 삼키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겨울은 겨울답게 시립고 추워 빈궁한 자기 자신을 충분히 깨달은 후에 따스한 봄 같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겨울도 아닌 것 같은 날에는 모든 것이 흐릿할 뿐이다.
괜스레 건조해진 뺨을 신경질적으로 훑으며 아무것도 품지 않은 마른하늘만 째려보게 되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