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설은 민족 대이동의 시기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빠져나갔다고 하는데도 연휴가 시작되는 어젯밤부터 고속도로 또한 정체가 심하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우리 가족은 연휴기간 내에 계속 서울에 머물 예정이라 내일부터 갑자기 복작복작하던 거리에 썰물처럼 사람들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연휴의 설렘이 가득해진 밤에 평소대로 잠드는 게 아쉬워 미뤄두었던 퍼펙트 데이즈를 봤다. 2시간여 동안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듯 도쿄 화장실을 청소하는 청소부의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함께 했다. 그가 바라보는 햇살의 그림자, 나무 끝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 아침 새소리들을 함께 느끼다 보면 단조로운 그의 일상 속에서 언뜻언뜻 평화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퍼펙트한 일상의 연속이다가 마지막 십여분 정도에 갑자기 파도가 밀려들었다. 선술집 여사장의 전남편과의 대화 속에서 영화가 보여주던 완벽한 일상들이 어쩌면 그림자 세상이었던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는 외로운 도시노동자와 시한부 생을 선고받은 초로의 두 노인의 모습에서 기쁨보다 슬픔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나게 됐다는 암에 걸린 선술집 마담의 전남편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완벽한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그림자 세상을 살다갈뿐 삶의 실체는 모른 채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서글픔도 느껴졌다.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보여준 울듯 말 듯 빨개진 눈으로 오늘의 삶을 운행해 나가는 주인공의 얼굴에서 애잔하고 저릿한 동지애 같은 슬픔이 느껴져 몇 번이나 그의 표정을 돌려보았다.
매년, 귀소본능처럼 가족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도시 이방인들에게 연휴 내내 완벽한 날들이 펼쳐지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