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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우리 설날

by 이혜연
우리 우리 설날

지금은 연휴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설날이 어렸을 적엔 설레는 이벤트였었다. 설이 오기 전 시골마을은 한 달 전부터 북적북적하고 행복한 생기로 담너머 모든 주민들이 바쁘게 지냈었다. 가을볕에 말려놓은 호박고지, 무말랭이, 가지 말린 것과 토란대 말린 것들을 물에 불려 나물준비를 하고 뜨뜻한 구들장에는 유과를 만들기 위해 찹쌀도우를 만들어 말려두었다. 시장에 나가 오래간만에 아이들 새 옷과 양말을 사주고 산골마을에서 귀한 꼬막과 생선도 부엌 한편에 놓아놓고 잔칫상을 준비했다. 방앗간에서 긴 가래떡을 해오면 밤새 떡국떡을 써는 엄마옆에서 하나씩 집어 먹기도 했고 봄에 뜯어말려놓은 쑥을 확독에 갈아 쑥인절미를 만들어 콩고물에 묻혀주면 아기새처럼 입을 쩍쩍 벌려 맛있게 먹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준비하는 동안도 좋았지만 설날 아침이 되어 제사를 지낸 후 한복을 입고 마을 어른들 댁에 새배를 다니면 자그맣게 세뱃돈을 주셨는데 어린 마음에 그게 그렇게 좋았었다. 아침나절 내내 새배를 하고 나면 오후엔 마을 입구에 있던 점방에 가서 평소엔 엄두에 내지 못했던 장난감을 사서 볕바른 토방 위에서 하루 종일 놀았었다. 지금은 유과도 만들지 않고, 밤새 떡국떡을 썰 일도 없고, 호박고지와 각종 나물도 마트에서 사 오면 그만인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동네를 돌며 어른들 세배를 다니지도 않는다.


텅 빈 도시 골목 안, 사람 없는 거리에서 어렸을 적 문풍지로 들어오던 시린 바람만큼이나 차가운 날에 어린 시절 추억으로 군불을 지펴 얼어버린 가슴을 조금씩 녹여본다. '그땐 정말 그랬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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