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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을 날아서

by 이혜연
깊은 밤을 날아서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이조년의 시조는 봄밤, 배꽃무리 아래에서 느껴지는 춘심이 절실히 느껴지는 구절이라 봄이 오는 늦은 밤엔 저절로 떠오르곤 하던 시구였다. 그런데 요즘 내게도 잠 못 드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반백년 돌고 도는 봄이 새삼스레 설레어서도 아니고 춘풍에 가슴을 두 방망이질할 사랑을 꿈꾸어서도 아니다.


불면증의 이유는 연년생 아이들 때문인데 그놈들의 "다정"이 문제였다. 아이답지 않게 감정도 잘 다스리고 의젓하던 첫째가 첫 번째 사춘기인지 갑자기 엄마에 대한 애정이 집착처럼 새벽녘에 나타나곤 한다. 함께 잘 자다가 엄마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다 싶으면 두 아들이 모두 엄마 찾아 삼만리처럼 더듬더듬 어둠을 뒤적이며 나를 찾아 나선다. 엄마 껌딱지인 둘째는 그런가 보다 하는데 첫째는 혼자 독차지를 하려고 하는 바람에 새벽에 때 아니게 쟁탈전으로 시끄러워진다. 혼자서만 엄마의 품을 모두 차지하고 싶은 첫째와 엄마 곁을 절대 떠나지 못하는 둘째의 고집스러운 다정함이 잠 못 들게 하는 요즘, 오라는 봄은 안 오고, 스무 살 처녀가슴 울렁이게 하던 첫사랑도 아닌 10살, 9살 사내아이들의 애정에만 불이 붙었으니 이를 어째야 한단 말인지...


홀로 까만 밤을 유영하며 스치는 사랑이라도 꿈꿔보고 싶지만 양 옆구리에 꼭 붙어있는 다정한 아이들 덕분에 불면증만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이 봄도 바람 한 번에 우수수 쏟아져버리는 꽃잎처럼 흩어지고야 말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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