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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오는 길목에서

by 이혜연
계절이 오는 길목에서

잔뜩 웅크리고 걷던 골목길을 한결 가벼운 옷차림으로 걸을 수 있는 날들이 오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마루에 앉은 햇볕이 따뜻해질 때 쯤에 담밑으로 손톱보다 작은 냉이 꽃들이 피어나곤 했습니다. 그 볕에 기대어 동네친구들과 여린 쑥과 겨우내 깊숙이 뿌리내린 냉이도 캐고, 돌아오는 길엔 버들강아지도 꺾어 와 무사히 건너온 계절을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번 찾아오는 봄인데도 매년 새롭게 느껴지는 건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새로운 기획가 주어졌다는 것이 느껴질 때 다시 찾아온 봄에 설레게 됩니다. 자다가 설풋 잠에서 깼을 때, 종종걸음으로 약속 시간에 맞춰 뛰다가 골목을 돌아설 때, 잠깐 멍하니 서있는데 산뜻한 바람이 옷 속으로 스며드는 순간순간마다 다시 주어진 기회의 순간을 마주치게 됩니다. 하지만 봄에 꽃샘추위가 있고 여름엔 장마가 있으며 가을수확기에 태풍이 일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이루고 싶은 것들을 완성해 내기 위해선 잘 견딜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 또한 길을 찾기 위한 이정표가 되고 또 다른 삶의 기회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한 걸음씩 내딛는 꾸준함이 중요한 일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어제오늘 이렇게 포근한 볕들이 계속된다면 겨우내 마른 가지 가득 꽃이 환하게 빛날 날들이 머지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오늘도, 새롭게 다가온 봄날도, 향기롭게 피어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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