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잎하나 달려있지 않은 나목들이 얼마나 볼품없이 깡 말라있는지 안쓰러웠었다. 저렇게 맨몸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그들의 운명이 찬바람 앞에 어깨를 웅크리고 서 있는 내 모습 같을 때는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얀 눈송이를 이고 있을 때는 솜이불을 덮은 듯 쓸쓸함이 덜 해 보여 겨우내 포근한 눈이 오길 기다린 적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혼자서 석촌호수를 뛰고 나서 커피 한잔을 마시려 넓은 창이 있는 커피숍에 들어갔던 날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아침에도 숨 쉴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새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고 나무는 여전히 헐벗은 채 거리 가운데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헐 거 벗은 나무가 더 이상 추워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지만 운명의 수레바퀴가 한 계절을 무사히 넘어왔다는 것을 아는지 빈가지 가득 햇살이 걸려있어 무뚝뚝한 나무둥치가 따뜻해 보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움츠린 숨구멍 하나하나 여리고 푸른 새싹들을 내어 깊은 그늘을 만들어내는 아름드리나무로 바뀔 것이다.
추운 계절을 무사히 버텨준 저 나무의 그늘에서 가장 갈증이 심한 계절을 쉬었다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길을 걸아가는 모든 생명들, 삶을 살아내야 하는 생명 모두에게 오늘도 감사인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