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혜연 Nov 04. 2022

우리, 시간

아름다운 기억

우리, 시간


당신과 함께

따뜻한 차 한잔

그 시간의

온기가

차가워진 가을을

가득 채운다


지난 옛 시간

어디쯤에서 닿은

인연의 끈이

어제 그리고 오늘

짧은 만남으로

이어져


바람이 불어와

거리를 비우는 

가을밤

당신과 함께 한

이야기들로

식어가는 

마음을 데운다





가을은 떠나가는 것들이 비워둔 곳을 그리움으로 채우는 시간인 것 같아요. 텅 빈 가지 사이로 흩어진 지난 시간과 그 속에서 함께 했던 그리운 이름들을 새겨보는 날들.


서른에 떠난 유럽여행 후 생계를 위해 병원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자유라는 이름에 너무 취해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을 그때는 거침없이 해댔었죠. 

여행 중에 까무잡잡하게 탄 얼굴로 처음 면접에 흰 티와 청바지 그리고 굴러가는 바퀴가 달린 힐리스를 신고 병원  접수대를 쭈~~ 욱 미끄러져 들어가 면접을 보고 왔습니다. 원장님도 어이없었는지 웃었고 간호사들은 그때부터 여자 돌아이라고 불렀습니다. 

맞습니다. 그 돌아이가 바로 서른 살의 저입니다.

엉뚱하다는 말을 수시로 듣고 살았었던 그때 그 시절.


나보다 어린 그 친구는 사회성도 좋고 위기 대처능력도 좋아서 항상 저를 보호해줬었죠. 매일 점심시간마다 산책을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오는 시간들이 있었기에 일하러 간다는 기분보다 재밌게 좋은 사람과 시간을 보내다 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어요. 함께 근무한 게 6년. 그 이후로도 쭈욱 안부를 묻는 사이. 그 친구와 만난 지도 벌써 20년이 됐네요. 언제 통화해도 그 시절 그 모습으로 만나지는 사람. 강산이 두 번 바뀌었는데도 힐리스 이야기를 꼭 하고  그때마다 돌아이인 줄 알았다는 말을 해서 사람의 첫인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사람.

엄마를 모시고 좁은 옥탑방에 살 때 병원에 치료하러 오면 나 대신 엄마 모시고 머리도 하러 가 주고 엄마에게 점심도 사주던 사람.

내가 실수를 할 때도 상황을 웃음으로 부드럽게 무마시켜주던 능력자.


언제 만나도 유쾌하고, 언제나 행복을 주는 그 사람 덕분에 힘든 시간을 웃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어요. 한 해가 다 저물도록 만나지 못하고 가끔 전화로 안부 묻는 게 다지만 그때도 지금도 당신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내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